여당 총선 참패, 부패-경제난에 민심 폭발 정권교체 교두보 확보한 야당 입김 커질듯 이시바 정권 유지돼도 정책 추진력 큰 타격 한국, 외무성 등 관료 영향력 강화 대비를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자민당 참패의 최대 원인은 비자금 스캔들에 대한 민심의 분노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파벌 단위로 들어온 정치자금을 호주머니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심은 자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결국 준엄한 심판으로 귀결되었다. 자민당이 비자금 연루 의원들에게 2000만 엔의 활동비를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민심 이반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민당은 나름의 처방을 내렸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파벌 해체, 기시다의 불출마에 이은 이시바 신총리의 등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의원 12명의 공천 배제 등 나름의 개혁 조치를 단행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물가와 실질임금의 감소로 인한 서민들의 경제난도 자민당 지지 이탈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의 승리는 자민당 실패의 반사이익 효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두 야당의 치밀한 선거전략이 성공을 거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선거 결과가 초래할 변화는 무엇인가. 첫째, ‘아베 정치’의 퇴조이다. 표면적으로는 자민당 참패로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옛 아베파의 몰락, 아베 정치 세력의 청산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강권적 속성, 부패와 연계된 아베 정치가 약체화되고 자민당 본류 보수세력의 회귀가 이루어졌다. 둘째, 이념적 측면으로 보면 우파적 속성이 농후한 자민당 내 옛 아베파와 일본유신회가 약화한 반면에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레이와신센구미 등의 중도 리버럴 세력이 약진하여 이념적으로는 오른쪽에서 중도 쪽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셋째, 자민당 우월정당 시스템(자민당 1강 체제)으로부터 온건 다당제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네 번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한 반면에 제1야당은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밑도는 만년 야당으로 전락했었다. 이번 선거로 야당은 비로소 정권 교체가 가능한 교두보를 확보하였고 대내외 정책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주체로 등장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이시바 정권이 이번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시바가 단명 정권에 그치고 총재 선거가 조기에 실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번 선거 결과 일본 정치의 유동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고 한 치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정치 격변이 지속될 것이다.
한편, 이번 총선 결과가 한일 관계에 주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다. 이시바 정권의 구심력이 약화할 것은 필지의 사실이나 그것은 조세, 복지, 교육 등 사회경제 정책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이견이나 대립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교안보 정책 사안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야 간 정책 경쟁으로 초래될 정권의 구심력 약화는 결과적으로는 외무성 등 관료조직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