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문화가 탄생시킨 ‘필연적 반찬’ 김치는 한국에만 있는 발효음식
발효식품인 한국 김치의 독특성과 건강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미 퍼져 있는 김치에 대한 왜곡된 이야기가 김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왜곡 주장은 ‘한국에서 중국의 파오차이, 일본의 쯔께모노, 독일의 사우어크라프트와 같은 절임류를 오랫동안 먹어 오다가 고추가 들어온 다음에 현재 같은 모양의 김치를 탄생시키게 됐다’는 것이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논문은 없고 선택적 문헌으로 일반인 사이에서 돌고 있는 통설이다. 많은 논리적 허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수준의 주장을 대체로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도리어 외국인들은 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한문책 해독 능력이 뛰어난 인문학자들이 우리 식품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고 발전시킨 부분은 분명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식품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이들 인문학자만의 영역은 아니다.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하는 중국 한자 고문헌에 의한 음식 연구는 중국음식 연구에는 맞을 수 있으나 우리 음식 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결정적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하여 인류학적, 지리학적, 생물학적, 음식학적, 과학적으로 우리 음식의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김치는 중남미 고추같이 먹으면 죽을 정도의 매운 고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절대 탄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김치는 우리나라에 많이 나는 채소와 매콤달콤하고 아주 예쁜 빨간색의 우리 고추가 있었기에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밥상 문화와 같은 식문화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김치와 같은 맛있는 반찬이 있어야 했으며, 한자나 식품 기술, 발효나 미생물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도 필요 없었다.
밥상 문화인 한식에서,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하여 많은 반찬의 도움이 필요했고, 반찬을 맛있게 하려니, 양념이 만들어졌다. 양념 맛의 핵심은 색과 맛이다. 고추의 빨간색으로 입맛을 다시게 하고, 고추, 마늘, 파, 생강의 향신 성분은 위(胃)에 일정한 자극을 주어 위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입맛을 돋우고 소화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마늘과 파, 고추로 맛을 내고, 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서 양념을 만들어 채소를 버무리면 맛있는 반찬(겉절이)이 된다. 이 겉절이를 다 못 먹고 남길 때도 있었는데, 몇 시간, 아니 며칠이 지나서 아까워서 먹으려 보면 비록 냄새는 났지만 먹어도 배에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밥맛까지 좋아졌던 것이다.
이 깨달음이 김치 탄생의 비결이고 우리나라에만 김치가 있는 이유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