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새 이론, 진화해 생활로 침투해 온다
학과엔 전도성 고분자를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탄 시라카와 히데키 교수가 있었다. 전도성 고분자란 전기가 통하지 않은 플라스틱과 달리 금속 및 반도체적 성질을 갖는 고분자 유기물질이다. 히데키 교수는 1970년대 초반 도쿄공업대학 조수로 일하던 때 전도성 고분자를 발견했으며, 그로부터 30년 후 이 발견으로 200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히데키 교수의 평소 모습은 학문적 권위를 떠나 동네 할아버지같이 소탈했다. 어느 종강 기념 회식 자리였는데, 내가 히데키 선생님이 따라주는 술을 쭉쭉 받아 마셨더니 “이상(李さん) 제법 마시네” 하고 말씀하신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 컴퓨터학과 제프리 힌턴 명예교수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 분자생물학과 존 홉필드 명예교수가 수상했다. 지금까지 주로 기초과학 분야에 노벨상이 수여됐던 터라, AI(인공지능) 연구에 노벨상이 수여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AI의 개념은 물리학과 생물학에 기초를 두고 있고, 노벨상의 철학인 “인류를 위한 커다란 진보를 촉진할 위대한 업적”임에 틀림이 없다. 미래의 진보에 방점을 둔 시상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광전효과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광전효과 이론은 1905년에 발표되었지만, 실제 광전효과를 이용한 태양전지는 1954년 미국의 벨 연구소에 의해 발명됐다. 그 후 태양전지는 4년 후 뱅가드 우주선에 사용됐다. 이론이 실제 응용된 것은 50년이 지난 후다.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은 서서히 진화해 우리의 생활로 침투해 들어온다. 새로운 이론은 세대를 넘어 인류의 발전에 서서히 녹아든다. 100년 전 등장한 양자역학 이론이 발전을 거듭해 현재 우리가 양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탄 인공지능이 과연 우리를 어떠한 미래로 이끌지 자못 궁금하다.
올해 노벨 문학상은 한강이 수상했다. 소설가 한강은 서촌에 살고 있다. 나 역시 서촌에 살고 있다. 경복궁과 인왕산 북악산에 둘러싸인 서촌은 예술적으로 특별한 곳이다. 서촌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날 때마다 당시 이곳에 살았던 시인 이상(李箱)을 만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서촌의 골목길을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과 동시대에 걷고 있다니, 이 역시 내 인생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