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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살갗이 눈을 맞게 하고 ‘차갑다’고 적는다

입력 | 2024-10-31 03:00:00

감정이입-체험 중시해 생생한 묘사
책표지 작가사진 보정작업도 막아
대외활동 멈추고 새 작품 집필 시작



한강이 2020년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소년이 온다’의 한 대목을 읽고 있다. 한강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소설을 쓸 때 “900명의 증언이 들어 있는 구술집을 완독했다”고 했다. 유튜브 캡처


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보름 넘게 지났다. 17일 포니정 시상식을 끝으로 공개 활동을 삼가고 있는 한강은 새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출간이 목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던 그가 다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소설을 쓰는 한강의 ‘진짜 삶’의 모습은 어떨까. 앞서 한강과 함께 작업한 편집자들과 한강의 과거 발언을 통해 재구성해 봤다.

● 지독한 체험형 글쓰기

한강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건 실제로 겪는 듯한 생생한 묘사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선 시각과 청각, 촉각을 동원해 눈을 묘사한다. 작가는 2021년 출간 당시 북토크에서 “눈이 내릴 때마다 나가서 눈을 집어서 녹을 때까지 지켜보기도 하고 얼마나 추워지는지 느꼈다”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택시 타고 가장 가까운 산으로 가서 미친 사람처럼 등산로 밖으로 가서 헤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바람 부는 자정엔 천변 길을 걸었고,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했다. 그 기억은 작품 속 다음과 같은 구절로 되살아났다. “젖은 실밥처럼 앞유리에 달라붙는 눈송이들”,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한강은 작품 속 상황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독특한’ 행동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외딴집이 정전됐을 때 촛불이 얼마나 밝은지 보려고 보일러 센서 등을 가리거나 냉장고 코드까지 뺐다고. 구덩이 안쪽의 느낌을 알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운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직접 겪을 수 없으면 ‘공부’에 나섰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창비)를 쓸 때 “900명의 증언이 들어 있는 구술집을 완독했다”고 했다. 한강은 2020년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완독하고 나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림이 크게 그려졌다”며 “구술자료를 읽은 다음엔 사건을 자세하게 분석한 책들을 읽는 방식으로 나선형으로 자료를 읽었다”고 했다.

● 책 홍보에 발 벗고 나서기도

한강은 평소 조곤조곤 작게 말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진 순간도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펴내고는 대중 강연을 20여 차례 진행하며 직접 ‘판촉’에 나선 것. 그는 “이 소설을 홍보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에게 애착이 큰 작품일 터.

한강은 오디오북 녹음에도 직접 나섰다. 하지만 첫 장을 녹음할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계속 눈물이 나서 이어 나갈 수 없었기 때문. 나머지는 성우가 녹음하고 한강은 에필로그만 녹음했다고.

● “제 흰머리 보정하지 마세요”

대표작을 모아 지난해 출간된 스페셜 에디션 ‘디 에센셜’(문학동네) 표지에는 한강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한강은 사진작가에게 주름살을 지우거나 흰머리를 없애는 보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단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 주인공은 소설가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평소 한강도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일까. 한강은 이렇게 말한다. “저 자신을 떼어서 인물들에게 주기도 하지만 100% 저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