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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스웨덴 고령사회보장부 장관 “‘월급’이 ‘연금’보다 많게 정년 연장해야”

입력 | 2024-10-31 17:45:00


안나 테녜 스웨덴 고령사회보장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14년 뒤 65세 이상 고령자가 가구 생계를 책임지는 국내 ‘고령 가구’가 1000만 가구를 넘어서고, 2052년에는 전체 가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2일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의 안나 테녜 고령사회보장부 장관을 만나 고령화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가 속한 중도우파 성향의 온건당 소속이기도 한 그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만나 연금, 노인 돌봄 등 문제를 논의하고자 방한했다.

―2022년 10월부터 울프 크리스테르손 내각에서 고령사회보장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약 2년간의 장관직 수행 중 어떤 일을 하셨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최근에는 노인돌봄에 필요한 스마트 기술, 그리고 스웨덴에서 ‘전염병’이라 불릴 정도로 수가 급증하고 있는 치매 환자들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웨덴 국민의 노후는 어떤 모습인가? 한국의 경우 환경이 좋은 실버타운은 비용이 비싸고, 요양병원은 환자와 가족 모두 선호하지 않는다.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노인 고독사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우리의 지향점은 노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집에 머무르기를 원하면 재가 돌봄·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지원하고, 지역별로 다양한 요양시설·병원이 존재한다. 

물론 정부가 모든 고령자의 삶의 수준을 동등하게 만들 순 없다. 당연히 지역 내에서도 고급 요양시설은 더 비싸다. 다만 ‘하방’을 높임으로써 빈곤 고령층 또한 ‘썩 괜찮은 삶’을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저보증연금’과 ‘의료비 개인 부담금 상한제’를 시행함으로써 적어도 ‘돈이 없어 필수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은 없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저보증연금은 연금 저축액이 너무 적어 기준에 미달하는 수급액을 받는 노인에 대해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으로 한국의 기초연금과 비슷하다. 다만 올해 기준 스웨덴에 40년 이상 거주했고 월 연금 수급액이 1만7655 SEK(스웨덴 크로나·약 228만 원) 미만인 고령자에게는 매달 최대 1만1603 SEK(약 150만 원)의 최저보증연금이 지급되고 주택급여도 별도 지급돼, 한국의 기초연금(월 최대 33만4810원)보다는 그 액수가 훨씬 크다. 또 스웨덴에는 의료비 개인 부담금 상한(연간 진료비 1400 SEK, 약값 및·의료기기 구매비 2850 SEK)이 존재해 이를 넘는 초과분 전액은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고령화 대처 방안 등 한국과 스웨덴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을 만난 테녜 장관. 보건복지부 제공



―고령화로 “평균수명 증가에 맞춰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노인 취업률은 높아질 지 몰라도 청년 실업률이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맞선다. 스웨덴은 지난해 정년을 기존 65세에서 67세로 높였는데 어떻게 보나.

“국민의 ‘근로 소득’이 ‘복지 수당’을 능가해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고령층이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은 연금을 비축해야 연금 고갈을 방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절실한 현대 고령화 사회에서 기업과 사회 전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의 숙련된 경험과 지식이야 말로 큰 ‘가능성’이라 본다.”


―한국 역시 연금 적자를 타개하려면 납입금을 대폭 인상하고 혜택을 줄여야 하는데 국민들의 거부감이 심하다. 스웨덴 정부가 국민을 설득한 비결은?

“비결은 ‘정부 신뢰’에 있다. 스웨덴 국민은 정부가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높은 세율을 수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 본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고령자 지원, 보육, 교육 등 응당 쓰여야 할 곳에 쓰고 있다는 신뢰가 전제돼 있다. 이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자 정치인, 공무원 등도 당적이나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국가운영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정년 연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안나 테녜 스웨덴 고령사회보장부 장관.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2019년 기준 스웨덴 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9.9%로 한국(14.9%)과 별차이가 나지 않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의 비율은 25.5%로 한국(12.2%)의 2배가 넘는다. 장관께서 속한 온건당은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중도우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막대한 사회복지지출에 따른 경제성장율 침체에 대한 우려는 없나?

“물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스웨덴 정부는 국민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월급’을 ‘연금’보다 많이 받도록 소득세 인하 등 다양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근로의욕이 고취되고 기업 역시 스웨덴을 탈출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경제가 성장하면 다시 복지 정책을 시행할 국고가 쌓이기 때문에 선순환이라고 본다.”

올 9월 스웨덴 정부는 소득세 한계세율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실현 시 현재 55%인 최고한계세율은 3%p 정도 떨어지고, 세수는 47억 SEK(약 6067억 원) 감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기술을 이용한 노인 돌봄 솔루션을 주제로 하는 포럼에 참가하셨는데. 스웨덴에서 정보기술(IT)을 이용한 노인돌봄 솔루션의 좋은 사례를 알려주신다면. 


“대표적으로 최근 스웨덴 정부는 고령자 거주지에 의료장비, 센서 등을 설치해 실시간 확인하고 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갑작스레 쓰러지거나 오랜 기간 움직임이 없으면 스마트 기기가 이를 알려 담당 인력이 출동하기 때문에,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해 고독사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개인정보침해에 대한 우려는 없나?

“의식이 뚜렷한 고령자라면 상관 없지만 치매 환자와 같이 인지장애를 가진 고령자의 경우 디지털 기술 적용 시 동의를 받거나 스스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만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고령자도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침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기술 규제, 그리고 이들의 동의 능력과 관련된 법적 쟁점들을 살펴보라고 개인정보보호청의 법률 책임자에게 지시해둔 상태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