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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덕분에 새로 알게 된 것들[후벼파는 한마디] 

입력 | 2024-11-01 13:00:00


신곡 ‘아파트’를 듣다가 몇 가지 새로 알게 됐다. 첫 번째, 아파트라는 술자리 게임이 있다. 노래 가사는 그에 착안했다. 나는 그런 게임 모른다. 후배에게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같은 건가? 가수 김종국 있잖아. 그 옛날에….”

그러자 그의 눈빛엔 언제 적 ‘당연하지’냐는 빈축이 담긴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가 귀에 이어폰을 꼈다. 유튜브로 검색해서 무슨 게임인지 알아본다. 랜덤 게임. 랜덤 게임….

두 번째, 아파트는 콩글리시다. 중간에 R 발음을 넣어 혀를 안쪽으로 유순하게 말면서 ‘아파ㄹ-트-먼트’(Apartment)라고 해야 뜻이 통한다. 해외 특파원으로 아파트먼트에 1년 살았는데, 몰랐다. 몰랐는데도, 그땐 아‧파‧트라고 끊어 말한 적이 없긴 하다. 굳이 따지자면, 아파트는 욕망과 결부된 재화라면 아파트먼트는 주거 형태를 일컫는 단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려나 깊게 따질 일은 아니다. 이 노래는 아파트의 사회적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다. 랜덤 게임, 랜덤 게임…. 입과 귀에 착 감기는 리듬일 뿐이다.

‘아파트’ 뮤직비디오 캡처.

노래는 한국적인 맥락을 이질적인 영어 가사에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서 가수 본인의 자의식과 배경을 영리하게 드러낸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영어 가사 속에서 생경하게 맞부딪치자, 누구든 아파트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질 지경이 된다. 그러다가 노래가 창의적이면서도, 편안하다는 인상이 함께 전달된다. 이 노래를 들을 때, 한국인을 포함한 전세계인이 비슷하게 받는 느낌이다.

여럿 모이는 술자리 게임에서 리듬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박자에 정확하게 맞물리는 단정한 3음절, 초성에 ㅍ-ㅌ 파열음이 맞물리면서 만들어내는 어감이 입안에 굴리기 좋다는 건 술자리 게임에 끼어본 적 없는, 나도 알겠다. 그러나 이게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상품이자, 즐길 만한 음악적 잠재성이 있다고 하는 건 다른 차원이다. 어지간한 자기 확신 없이는 밀어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로제의 자기 확신을 뒷받침했던 건 우선은 예술가적 직관일 것이다. 그동안 로제의 음악뿐 아니라 디자인 작품도 소개되면서, 예술가로서의 미감이 진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처럼 타고난 직관에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로서 수년간 대중의 취향과 발맞춰온 가운데 쌓아간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 공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기 취향을 더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느껴진다.

‘아파트’ 뮤직비디오 캡처.

그렇다면 아파트의 흥행은 탁월한 잠재성을 지닌 개인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 재능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육성해 온 창작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결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엔터테인먼트라는 업(業)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에, 예술가를 산업 부속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확신에 차서 결과로 입증한, 솔로 로제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면, 엔터업에 종사하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업의 본질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아파트 덕분에 새롭게 이해하게 된 일 중 하나다.

“That’s what I’m on, yeah.” (로제·브루노 마스, APT 中)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