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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이성엽]흔들리는 리걸 테크, 혁신 싹 밟는 ‘제2 타다’ 안된다

입력 | 2024-11-01 23:15:00

고법, ‘로톡 이용 변호사 징계 정당’ 판결… 변협은 AI 기반 법률상담 서비스도 징계
법률 소비자 편익 해치는 통제 강화 우려
美-獨-日선 법조계가 리걸 테크 상생 도모
법무부 특위, 합리적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법률 플랫폼 ‘로톡’을 이용한 변호사를 징계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로톡은 소비자들에게는 변호사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변호사들에게는 정액의 광고료를 지급받고 소비자들에게 우선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변호사 검색·광고 플랫폼이다.

변협은 로톡의 변호사 광고 서비스가 변호사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변호사들에게 로톡에서 탈퇴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이에 응하지 않는 변호사들에 대하여 과태료 부과, 견책 등의 징계 결정을 하였다. 이에 변호사들은 변협 등의 위 행위가 ‘변호사들의 사업 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이자 ‘법령에 따르지 않고 사업자단체에 가입한 변호사들에 대해 표시·광고를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정위에 제소했고 공정위는 이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변협 등에 시정명령과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에 이 공정위 결정이 고등법원에서 취소된 것이다.

법원 판단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법원이 변호사 직무는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있으므로 변호사들이 리걸 테크를 이용하는 경우 그 사업 내용이나 활동에 대한 변협의 적정한 검토·심사 등 검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법률 플랫폼 등 리걸 테크에 대한 변협 등의 대한 통제를 강화할 명분을 주었다.

실제 변협은 AI 기반 법률 상담 서비스 ‘AI 대륙아주’와 관련해 변호사법상 광고 규정과 동업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륙아주와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개시했다. 이에 대륙아주는 10월 8일 AI 대륙아주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나아가 지난달 21일에 변협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칙 제정안’을 수정 가결해 소비자가 AI 등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게 하거나 소비자에게 AI 등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방식·내용의 광고를 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법률 AI 서비스를 금지한 것이다.

한편 로톡 이용으로 징계 처분을 받은 변호사들은 공정위 제소 외에 법무부에 이의 신청을 했고,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9월 변협의 징계 처분을 취소했다. 이전에도 2022년 로톡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것과 불특정 다수의 변호사를 동시에 광고·홍보·소개하는 행위를 하는 자에게 광고를 의뢰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등과 비교해 보면, 이번 사법부 판결은 리걸 테크를 수용하려는 법무부, 검찰, 공정위 등 행정부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이번 판결과 변협의 법률 AI 금지 규정으로 인해 오랜 기간의 갈등 끝에 찾아온 리걸 테크와 법률 AI 발전의 단초가 사라지고 혁신의 싹을 밟는 ‘제2의 타다’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리걸 테크에 대한 통제가 다시 시행되면 소비자들은 법률 플랫폼에 가입·활동 중인 변호사들의 업무 능력, 평판, 상담료 등을 서로 비교해 본 후 자신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변호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게 된다. 변호사들도 변호사 검색·광고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봉쇄당하게 된다. 또한 변협의 법률 AI의 금지로 소비자는 예비적인 법률 의견과 정보를 구할 길도 막혀버렸다.

리걸 테크와 법률 AI는 변호사의 업무 생산성을 엄청나게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기존 법률 시장에 존재하는 비용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사법 시스템에 대한 법률 소비자의 접근권을 제고한다. 아쉽게도 한국은 최고로 우수한 법조인을 보유하고 있고 정보통신기술과 AI 분야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리걸 테크 분야에서는 후발국에 불과하다. 리걸 테크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에서는 기존 법조계가 법 제도를 개정하여 리걸 테크와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한국도 법무부에서 변호사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변호사 검색 플랫폼 운영 가이드라인을 수립 중이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리걸 테크와 법률 AI에 대한 합리적인 규율과 규제 기준이 마련되어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