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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철학보다 중요한 현실”… 100년 전 대학생의 외침[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11-02 13:00:00

백년사진 No.85




● 청년들의 웅변대회가 처음 열리다

1924년 가을, 조선의 하늘은 납빛으로 흐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당은 젊은 이들의 열기로 무거운 구름을 헤치고 있었습니다. 신문사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현상학생웅변대회, 그날의 청중이 만들어낸 열기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조선의 내일을 고민하는 동지이자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조선 청년들의 첫 웅변대회 모습. 연사 바로 옆에 경찰이 앉아 불온한 내용이 나오면 제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1924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저녁 일곱 시.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한 시민들은 건물 밖 창문을 통해서라도 조선에서 처음 열리는 청년들의 웅변대회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현장 실내가 꽉 차 건물 창문에 올라가 실내를 보는 시민들 모습. 1924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천도교당에 들어 온 청중들은 강단을 꽉 둘러싸고 있었고 ,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시작을 기다리던 그들 앞에 첫 연사가 올랐습니다. 그 순간, 숨소리마저 멈춘 듯 고요가 감돌았습니다.

“우리의 각오!” 세브란스 의학전문의 이영준이 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전했습니다. 관중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내려오자 이어서 연희전문의 박희성이 “종교와 인류와의 관계”를 주제로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연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시대를 고민하는 자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웅변이 이어지는 중간중간, 때로는 일본 경찰이 연설을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사회자는 간청했습니다. “동아일보를 사랑하거든 참아달라!” 그 말에 청중들은 흥분을 억누르며, 다시 한 번 강당 안은 진정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조선의 젊은 기개가 그렇게 하나로 모였습니다.

이튿날, 중등학교 학생들의 웅변이 이어졌습니다. 배재학당의 장치모는 “사회교육화하라”는 연설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육을 노예화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거침없었고, 청중들은 그의 외침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밤늦도록 청중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청운동 골목을 메웠습니다.


웅변 대회를 보기 위해 종로 경운동 천도교 강당 안에 모인 시민들. 웅변대회는 시민들이 하루 일과를 마친 오후 7시에 시작되었습니다. 1924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 철학보다 자연과학, 연애 소설보다 물리학 공부를 주장한 청년의 연설 원고

1등을 한 평양숭실대학 이성락 군의 웅변 내용을 함께 들어보시죠. 이성락군은 1925년 3월 대학을 졸업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연설에 나섰을 때 나이는 23, 24살 쯤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문사 기자들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그리고 연사의 말투 하나하나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 놓았더군요.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의 절절한 연설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조금 알기 쉽도록 띄워쓰기와 조사 등은 필자인 제가 손을 봤습니다. 라마(羅馬)는 로마의 음차 표현입니다.




◇평양 숭실대 이성락 등단 (박수)
하취하사호(何取何捨乎)
먼저 여러분에게 미안한 말씀을 드릴 것은, 제가 평양 사람이라 방언이 섞여 여러분에게 불편될 점이 있을 듯하니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그말은 그만 두라고 청중들이 본론을 제촉).

자공이 공자께 정사를 물으니 공자는 “족식족병(足食足兵)”이라 안으로는 백성이 굶주림 없고 밖으로 외환이 없으면 나라에 근심이 없으리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공도 현인이라 다시금 무엇을 제일 먼저 하릴까 하고 물었습니다. 공자같은 성인을 스승으로 모신 제자에 영광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역사도 없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상공업도 없고 농업도 없으며 산에 나무와 강에 물이 없고 만가지 시설이 하나도 없고 천가지 만가지 모두다 남에게 뒤떨어졌습니다(박수).

그러니 우리는 이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만은 일시에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라마(羅馬)의 문명은 이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룬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우리에게 취할 바와 버릴 바가 있습니다(박수).

우리에게 그 숭고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매워 이상을 높이하는 것이 필요하나 식산(殖產)과 공예(工藝)에 비할 바가 아니니, 가령 굶주린 사람이 길에 누었다 하면 그에게 철학이나 문학 같은 것을 가르쳐주겠습니까? 밥을 먼저 주겠습니까? 또 돈은 한가지를 살 것 밖에 가지지 않은 사람이 담배를 사겠습니까, 밥을 사겠습니까? 모든 것이 밥을 먹은 후에 주머니가 튼튼하여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박수).

증자(曾子)의 양지(養志)도 양구체(養口體)를 먼저 하여야 할 것이오, “윌손”이 부르짓는 정의 인도(正義人道)도 제 주머니가 차고 남은 후의 일입니다(박수. 청중 열광).

지금 우리 조선이 어떻습니까? 조상이 피와 땀으로 남겨준 땅을 버리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뜨거운 피눈물을 뿌리며 만주와 시베리아에 유리표방(流離漂放)하는 동포가 무엇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무엇을 먼저 주어야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빵을 주고 옷을 입혀야 되지 않겠습니까?(박수. 청중 열열광)

그 뿐입니까? 당장 기근으로 인하여 방금 나뭇잎과 풀잎을 먹다가 그도 못하여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습니까?(박수).

그들에게 철학을 주어야되겠습니까, 문학을 주어야되겠습니까? 무엇보다 빵을 주어라(박수).

초유본말(初有本末)하고 사유시종(事有終始)이라고 대학에도 있는 말과 같이 모든 사물의 본말을 잘 알고 그리고 선무취사(先務取捨)를 잘 알 것 같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배워 정신의 위안을 얻고 농공상을 일으키어 물질의 위안을 얻고자 하나 사람이 있어야 하고 경제가 허락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천만원이 없어서 민립대학 하나를 못 세우지 않습니까? 이것은 물론 자산가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돈이 없는 까닭입니다(박수).

사람들은 말하기를 외국에 유학하는 사람이 많으니 차차 사람이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합니다마는 그들에게 돈이 없어서 밥 얻어먹기에 공부할 겨를이 없습니다. 학생보다 노동자라고 부르는게 적당할 줄 압니다(박수).

경제계가 이래갖고야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신과학인 철학문학보다 자연과학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실제를 배우고 물질적 현상을 배워야되겠습니다. 연애에 실패하고 한강수 깊은 물에 어쩌고 어쩐다는 연애소설을 쓸 여유가 있거든 질소와 수소가 물이 되는 법을 알아야겠습니다(박수. 열열광).

녹음이 우거진 밑에 서늘하게 누워서 우주의 현상을 생각하기보다 들과 산에 나가 동식물표본을 채집하여 배우는 공부에 열열열열심할 것입니다(만장 환희 박수 연발).

우리의 처지가 이같으니 먼저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두가지 다 완성되는 때에는 삼천리강산에 무궁화가 되고 이천만 민중이 그 밑에서 춤을 출 것입니다 (열열열열열광 박수)(9시38분).


● 오늘은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 치러졌던 우리나라 최초의 웅변대회 모습을 사진과 기사로 살펴보았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의 울분과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느껴지셨나요? 좋은 댓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