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요충지 마리우폴서 AP통신 취재진의 20일간 기록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부모들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이를 안고 절규한다. 시체를 치우다 지친 의사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계속 찍어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아이의 눈과 우는 의사들을 보여주세요.”
6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AP통신 취재진이 20일 동안 촬영한 기록 중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영상까지 폭넓게 담은 작품이다.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여성이 폭격으로 인해 부상 당해 치료받고 있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취재진은 취재 윤리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전쟁 초반 사람들은 “왜 내 모습을 찍냐”, “기레기”며 취재를 거부한다. 돕지는 못할망정 카메라만 들고 다닌다며 못마땅해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카메라를 반긴다. 8일째부터 봉쇄된 마리우폴에서 인터넷이 끊겨 참상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돕는 일과 카메라로 찍는 일 중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던 취재진이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은 이유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폭격 장면이나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반격처럼 군사적 줄다리기는 거의 담지 않았다. 대신 폭격을 받고 울부짖고 괴로워하며 공포에 떠난 평범한 사람들을 앵글에 담으며 전쟁의 잔인함을 응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어섰고, 최근 북한군까지 참전한 만큼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진다.
취재진은 자신들을 뒤쫓는 러시아군을 피해 취재한 사진과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탐폰 생리대 속에 숨겨 나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취재진은 전쟁의 참상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상 공공보도부문을 수상했다.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33개의 상을 휩쓸었다. 취재진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거나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맞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