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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골프 간식비용, 나눠 내면 더 많이 나오는 이유

입력 | 2024-11-03 09:04:00

[돈의 심리] 자기 돈 쓰는 형태와 남의 돈 쓰는 형태가 다른 인간의 속성 때문




친구 20명이 단체로 골프를 치러 갔다. 골프는 한 팀이 4명씩 경기를 한다. 그래서 총 5팀이 됐고, 각 팀마다 따로 골프를 쳤다. 골프장에서 같이 밥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곤 해서 이렇게 먹거리에 쓰는 돈은 20명이 1/n 로 나눠 내기로 했다. 18홀 중 5홀 정도를 치니 간식 파는 데가 나왔다. 따뜻한 어묵과 꽈배기 등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은 9홀을 마쳤을 때 뭔가 먹을 수 있는 그늘집이 나오는데, 이 골프장에서는 5홀이 지나자 간단한 간식이 나왔다. 물론 공짜가 아니라 파는 것들이다. 그것도 시중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날씨가 조금 써늘해서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걸 사 먹으면 비용은 우리 팀 4명이 내는 게 아니라, 전체 20명이 나눠 내야 한다. 그러면 어묵을 사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4명 중 1명이 말했다.

“먹고 싶은데, 1/n이라서 좀 곤란하다. 그냥 가자.”

다른 1명은 이렇게 말했다.

“1/n이니까 먹자.”

사람은 공금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GETTYIMAGES]



간식비에 대한 엇갈린 의견

두 의견으로 갈렸다. 1/n이니까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1/n이니까 먹어야 한다는 의견. 전자는 우리가 먹은 간식 값을 다른 친구들도 내게 되니,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 비용을 다른 사람들도 지불해야 하니 삼가는 것이 맞다는 얘기였다. 후자는 간식을 먹어도 그 비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게 되니 별 부담 없이 먹어도 된다는 의견이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비용을 지불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갈등하고 있는데 어묵을 파는 사람이 결정적인 말을 날렸다.

“앞 팀에서는 많이 먹고 갔어요.”

앞 팀도 우리 20명 중 한 팀이었다. 그 팀이 이미 1/n로 계산되는 어묵을 먹고 떠났다. 그 말에 결정이 났다. 지금까지 1/n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사람도 “그렇다면 우리도 먹어야지”라며 어묵을 집어 들었다. 결국 우리도 푸짐하게 먹고 나왔다.

다시 골프를 치러 가면서 1명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이지!”

웃었다. 크게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부담하는 것은 참 좋다. 각자 꼭 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 부담을 함께 나누면 안정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부담을 모두 나누기로 했을 때 사람들이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쓰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에 돈을 쓴다는 점이다. 나 혼자 부담한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부담할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사곤 한다. 모두의 부담을 생각해서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변명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처음에는 안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팍팍 쓴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1/n이니까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던 친구도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보고서는 주저 없이 어묵을 집어 들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먹었다. 먹지 않으면 자기는 손도 안 댄 음식 값만 지불할 뿐이다.

먹고 싶은 걸 먹었으니 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따뜻한 국물이 나오는 어묵 1개만 먹으면 됐다. 그러나 어묵에 찹쌀떡 등을 제대로 먹고 나왔다. 우리가 돈을 전부 내야 했다면 어묵 2개 정도와 국물만 먹고 나왔을 것이다. 1/n이기 때문에 더 많이 주문했다. 그나마 1/n이라서 자신도 돈을 부담해야 하니 덜 먹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1/n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부담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비싼 간식을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공금 소비하는 경우 많아

우리는 모두 돈을 중요시하고 절약하며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수에 넘게 돈을 써선 안 되고, 사치해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사치는 돈을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돈을 아끼는 게 아니다. 자기 돈을 아끼는 것이고, 남의 돈은 별로 아끼지 않는다. 자기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의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돈으로는 사치하기 힘들지만, 남의 돈으로는 사치할 수 있다. 자기 돈으로는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술을 사 마실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돈으로는 사 마실 수 있다. ‘돈’ 자체가 아껴야 하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다. ‘내 돈’이 소중한 것이고, ‘다른 사람의 돈’은 별로 소중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막 써버릴 수 있는 대상이다. 공금이나 회사자금, 운영비 등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의 기준은 간단하다. 자기 돈처럼 사용하느냐, 아니냐다. 공금을 자기 돈처럼 사용하면 효율적인 소비이고, 자기 돈으로는 절대 쓰지 않을 곳에 사용하면 비효율적인 소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돈은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 정말로 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쓴다. 혹자는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을 비판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그만큼 명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말로 갖고 싶고 원하는 대상에 큰돈을 쓰는 건 충분히 효율적인 돈 쓰기다. 최소한 사회적 낭비는 없다.

문제는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쓸 때다. 이때는 정말 필요한 것을 넘어서 불필요한 것에도 돈을 쓴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아도 “이럴 때 먹어보자”며 사 먹고, 자기 돈으로는 절대 사지 않을 사치품을 산다. 더 비싼 차를 사고, 더 비싼 비행기 표를 구매하며, 더 비싼 음식점에 간다.

타인을 도울 때도 자기 돈이냐, 남의 돈이냐가 다르다. 정말로 타인을 돕는 게 중요하다면 자기 돈으로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자기 돈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돈만으로 돕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남의 돈을 사용할 때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된다. 비싼 것을 많이 사줄 수 있고, 좋은 선물도 해줄 수 있으며, 필요하다는 것을 팍팍 사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타인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자기 돈으로 해준다면 정말 잘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돈으로 잘해주는 거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돈에 대한 태도는 본능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 돈이든, 남의 돈이든 똑같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남의 돈도 자기 돈처럼 똑같이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돈을 아끼는 것이다. 자기 돈은 아끼면서 남의 돈을 팍팍 쓰는 사람은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단지 자기 것만 소중히 할 뿐이다. 진정한 구두쇠는 자기 돈이든, 남의 돈이든 쓸데없는 데 사용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자기 돈은 소중히 아끼면서 남의 돈은 팍팍 쓰는 사람은 진짜 구두쇠가 아니라, 그냥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돈을 팍팍 쓰는 사람을 욕하지는 말자. 대다수가 남의 돈도 아끼는데 소수만 팍팍 쓴다면 그때는 그 사람을 나쁘다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대부분이, 아니 거의 100%가 자기 돈과 남의 돈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 이런 건 개인의 인성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고 봐야 한다. 남의 돈을 맘대로 쓰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남의 돈도 자기 돈처럼 쓰는 사람이 훌륭한 것이다.

단지 그 속성만은 알고 있자. 사람은 자기 돈을 쓰는 형태와 남의 돈을 쓰는 형태가 다르다. 진짜 중요한 건 돈 자체가 아니라 내 것이냐 남의 것이냐이고, 다른 사람의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진짜 돈에 대한 자신의 태도다. 그리고 남의 돈을 주로 사용하려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인 사회가 된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자. 사람은 자기 돈이냐 남의 돈이냐에 따라 사고방식과 행동이 달라진다. 이 둘을 구분할 때 돈 쓰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3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