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11월 2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에서 박찬대 원내대표(왼쪽), 김민석 최고위원(오른쪽)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1월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9%였습니다.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입니다. 한 주 전보다 1%포인트 하락하면서 결국 취임 30개월 만에 10%대를 기록한 겁니다.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19%였고, 부정 평가는 72%였습니다. 긍정 평가는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 부정 평가는 최고치였습니다.
● 결국 20%가 무너졌다
지난 칼럼에서도 설명해 드렸지만, 통상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지율 20%’를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기준으로 봅니다. 내각제 국가에선 30%가 무너지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고, 대통령제 국가에선 20%가 무너지는 순간 국정 운영 동력이 상실된다는 거죠.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붕괴하고 있다는 경고등이기도 합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에서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주 만에 8%포인트가 빠져 18%에 그쳤죠. 대전‧세종‧충청(29%), 서울(22%), 부산‧울산‧경남(22%)은 물론, 전국 평균(19%)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0월 3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의 음성 통화 녹취 파일을 폭로했다. 왼쪽부터 박찬대 원내대표, 서영교, 진성준, 김용민 의원. 이들 뒤 화면에 녹취 파일의 내용이 텍스트 형태로 적혀 있다. 뉴스1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야당은 추석 연휴 직후부터 ‘지지율 20%가 무너지면 정권도 더 못 버틴다’며 전면 총공세를 예고해 왔죠. 실제 11월 2일 민주당이 서울역 일대에서 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에는 민주당 추산 30만 명이 모였습니다. 경찰 추산 2만 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민주당은 상당히 고무된 느낌입니다. 애초 당내에선 10만 명도 어렵다고 전망했었거든요.
민주당 중앙당은 일주일 전부터 각 시도당에 ‘참석자 규모를 미리 취합해 보내라’면서 사실상의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요즘 행락 철이라 지방은 버스 전세도 쉽지 않다. 지역별로 많아야 한두 대씩 빌릴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최대 1만 명 정도 아니겠냐”고 했고, 한 재선 의원도 “참가자들로부터 버스비와 식대 등 5만 원씩 걷어야 하다 보니 그렇게 많이 못 모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토요일 당일 서울역 일대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행렬에 대단히 만족한 겁니다. 한 원내지도부 의원은 집회를 마친 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왔다. 이제 이 기세를 꺾을 수 없다. 사실상 매주 이렇게 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월 2일 서울역 인근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대규모 장외집회가 열렸다. 민주당 추산 30만 명, 경찰 추산 2만 명이다. 뉴시스
이날 집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직접 탄핵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촛불혁명’과 ‘심판’ 등의 용어를 쓰면서 사실상 정권 끌어내리기를 예고했습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아닌 책임 없는 자들이 국정을 지배합니다. 주권자의 합리적 이성이 아닌 비상식과 몰지성이, 그리고 주술이 국정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촛불로 몰아낸 어둠이 한층 크고 캄캄한 암흑이 되어 복귀했지만,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증명해 냅시다.”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불의한 반국민적 권력을 우리의 손으로 확실하게 심판합시다.”
아무래도 1심 선고를 2주 앞둔 만큼 의도적으로 발언 수위를 자제한 듯합니다. 본인도 “지금은 제1야당의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며 “제가 드리지 못하는 말씀은 여러분께서 직접 현장에서 더 높이, 더 많이 말씀해 주시도록 부탁드린다”고 하더군요.
● 민주당 “일단 특검 후 다음 스텝으로”
야권 내에서는 앞으로 대응 전략과 관련해 대략 세 가지 방향이 거론됩니다. 특검, 임기 단축, 탄핵 등입니다.민주당 지도부 핵심 의원은 “일단 우린 특검이 최우선이다. 11월에는 특검에 주력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윤석열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이 강해질 것”이라며 “결국 자연스레 탄핵이든 임기 단축 개헌이든 그다음 스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야당의 특검 공세를 국민의힘이 계속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란 거죠.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도 집회 다음 날인 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내에서 임기 단축 개헌 및 탄핵 언급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일단 특검이 최우선”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무래도 제1야당으로서 대통령 탄핵을 되풀이하는 데에 대한 국민의 반감도 계산했을 겁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을 때의 역풍도 염두에 둔 듯하고요.
다만 야권 강경파 사이에선 ‘임기 단축 개헌’과 ‘탄핵’ 주장이 거리낌 없이 터져 나오는 중입니다. 당장 민주당 최고위원들부터 집회 현장에서 “윤 대통령은 이제 내려와야 한다”(이언주 최고위원) “윤 정권을 침몰시키자”(김병주 최고위원) “탄핵이든 개헌이든, 대한의 봄으로 이어질 것”(김민석 최고위원)이라며 경쟁적으로 강경 발언을 쏟아냈죠.
김상근 목사와 안재웅 전 한국기독교 민주화운동 이사장,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10월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권 임기 2년 단축 개헌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내 강경파로 손꼽히는 김용민 의원도 내년 3월에 국민 투표로 개헌을 진행해 내년 5월로 윤 대통령 임기를 끝내는 타임라인을 제시했습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으로서도) 임기 단축을 하고, 국가를 정상화하는 데 같이 동참하는 정치세력으로 남는 것을 택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지도부 의원도 “임기 단축안은 헌법학자 등 학계와 여권 내에서 먼저 나온 이야기”라며 “국민의힘이 일단 살아 남으려면 대통령 탄핵보다는 임기 단축이 낫겠다는 계산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1월 2일 대구에서 열린 ‘검찰해체·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언대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조 대표가 손에 들고 있는 피켓에 대구·경북(TK) 지역의 윤 대통령 지지율이 18%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구=뉴시스
특검이든, 탄핵이든, 임기 단축이든, 야당은 잃을 것 없는 꽃놀이패를 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도 용산은 요지부동 묵묵부답으로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듯합니다. 이달 중순까진 미국 대선에, 이재명 대표의 1심 판결 등 아직 버텨볼 만한 변수가 많다고 보는 거겠죠. 지지율 하락세는 이미 한참 전 상수가 된 듯 한데, 10%대 지지율 성적표를 손에 받아든 대통령 치고는 너무 여유있어 보입니다.
ps. 어제(11월 4일) 국회 시정연설에도 불참했던 윤 대통령은 여야 할 것 없는 비판을 의식한 듯 밤 늦게서야 7일 대국민담화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입장이 궁금해집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