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소득 핵심인재 초과근로 불사 韓반도체 기술 수준 4년새 93→86 산업계 노동규제 예외 요구 커져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 52시간 근로제’ 등의 규제 때문에 낙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대만 등 경쟁국에서는 반도체 핵심 인재들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 한국은 근무시간 관련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AI 반도체를 앞세워 세계 시장을 석권한 엔비디아의 성공 배경 중 하나로 ‘고강도 업무와 파격적인 보상’이 꼽힌다. 엔비디아의 이런 근로문화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압력솥(pressure-cooker)’에 비유된다. 집중적으로 일하고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엔비디아 직원들은 수시로 초과 근무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직률은 2.7%에 불과하다. 반도체 업계 평균 이직률 17.7%보다 훨씬 낮다.
엔비디아, ‘황금수갑’차고 주7일 근무… TSMC, 3교대 릴레이 연구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주52시간에 묶인 국내 반도체… 美-日 등 고소득자 유연근무 허용
韓, 업종-소득 관계없이 일괄 규제
“시장환경 급변 속 노동법 정비 필요”
“엔비디아 직원들은 종종 주 7일 오전 2시까지 일하지만 황금 수갑(golden handcuffs)이 그들을 회사에 묶어 둔다.”주52시간에 묶인 국내 반도체… 美-日 등 고소득자 유연근무 허용
韓, 업종-소득 관계없이 일괄 규제
“시장환경 급변 속 노동법 정비 필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8월 엔비디아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근로 문화를 다룬 기사 제목이다. 포천에 따르면 엔비디아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30인 이상 회의가 하루 최대 10번씩 열렸다고 전했다. 고강도 업무량이지만 지난해 이직률은 2.7%에 그쳐 반도체 업계 평균(17.7%)을 크게 밑돌았다. 고소득 직원들이 보상에 따라 초과 업무를 하는 환경을 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 미·일·대만, 근로 시간 규제에 예외 허용
일본도 고소득 첨단산업 사무 직종의 생산성을 위해 ‘고도(高度) 프로페셔널’ 제도를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금융상품개발자·애널리스트·연구개발자·공인회계사·변호사 등의 직종에서 연 1075만 엔(약 9700만 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인 경우 근로 시간 규제에서 제외한다. 출퇴근이나 휴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연간 104일의 휴일도 보장된다.
대만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혹은 관련 노사 회의 간 동의를 기반으로 일정 시간의 초과근무와 수당을 법으로 보장한다. TSMC 연구개발팀은 하루 24시간 3교대를 통해 릴레이식으로 연구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더인 전 TSMC 회장은 지난해 6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근무 시간과 관련된 미국 직원들의 불만에 대해 “반도체에 대한 열정이 없고 장시간 근무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생산성 위한 유연한 인력 운용 필수”
반면 한국은 고소득 개발·연구직이 집중된 반도체 분야를 포함해 모든 업종, 모든 소득의 근로자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일괄 적용하고 있다. 2019년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소득 상위 3% 근로자에 대해 근로 시간 기준 적용을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직이나 단순 사무직이 아닌 첨단산업 연구개발 인재들조차 해결 과제 중심이 아닌 출퇴근 중심으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SGI는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인력 운용이 필수적”이라며 “노동법제의 고용친화적 정비, 근로 시간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 개선,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