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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대한노인회장이 쏘아 올린 공

입력 | 2024-11-04 23:15:00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정년 연장’ 논의가 돌연 뜨거워졌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64세까지로 늦추는 방안을 내놓자 그렇다면 정년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행정안전부는 소속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최근 65세로 올렸다. 대한노인회 이중근 신임 회장은 노인 기준을 75세로 상향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파문을 던졌다.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걱정은 실제 고용을 담당할 기업의 부담과 청년 일자리에 미칠 영향이다. 이런 때 일본 사례를 참고하자는 의견이 단골처럼 나온다. 마침 지난주 일본의 지인이 정년퇴직 인사를 왔다. 그의 사례를 보면 60세 이상 고용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뒤늦게 불붙는 정년 연장 논의

한일 관계 전문가인 그는 올 7월 말 40년 다닌 직장을 만 65세로 퇴직했다. 이번 방한은 재직 중 교류했던 한국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이뤄졌다. 필자가 도쿄 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만 60세를 앞뒀던 그는, ‘달리 할 일이 없으니’ 회사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직원이 60세가 되면 일단 퇴직시킨 뒤 재고용하던 그의 회사는 당시 정년을 65세로 바꿨다.

그는 평소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60세가 된 순간 급여는 이전 대비 40% 선으로 줄었다. 그나마 이전의 재고용 방식보다 두 배로 늘어난 급여였다. 그 대신 업무 강도도 세졌다. 지인은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급여는 절반 이하라 불만들이 많았다. 나도 마지막 2년은 너무 힘들어 그만둬 버릴까 여러 차례 생각했다”고 했다. 이처럼 고령 직원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한 일본 기업들의 노력은 대체로 대폭 줄인 급여 덕에 이뤄진 경우가 많다.

현재 일본 기업의 99% 이상이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중 하나를 택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해준다. 법정 정년은 아직 60세다. 2004년 정부가 기업들의 ‘65세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하면서도 법제화는 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부담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 사회에서 고령자 고용 연장은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다. 생산인구가 쪼그라드는 ‘정해진 미래’ 앞에서 경제의 규모와 성장률을 유지하고 복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령자가 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버려지는 ‘잃어버린 세대’가 나올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 시기와 법정 정년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기가 문제다. 올해 퇴직자까지는 3년이지만 내년부터 4년, 2029년부터는 5년으로 갈수록 벌어진다.

1998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2013년부터 연금 수급 연령을 4년마다 한 살씩 올리기로 결정할 당시, 관계자들은 아마도 이때쯤이면 고용 형태도 바뀔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소관 부처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정년 연장’보다 ‘계속 고용’부터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정년과 관련해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나오는 건 바람직하다. 스스로 ‘노인’임을 부정하는 대한노인회 주장에서는 똑같은 생산 주체로서의 역할과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더 큰 그림도 읽힌다. 직장에서 50세만 넘어도 퇴물로 취급받는 최근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움직임들은 시니어들이 일하는 분위기 조성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일본 지인에게서는 주어진 소명을 다해 냈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대학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고 사회복지법인을 돕는 일도 시작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퇴직 다음 달부터 연금을 받은 건 물론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인생 선배들의 충고가 떠오른다. 100년 넘게 살아본 김형석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로 60∼75세를 꼽았다. 이 나이쯤이면 더 노력해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아직 세상과 인생을 즐길 기운은 남아 있는 황금기라는 얘기다. 소중한 60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선택은 그야말로 본인의 자유다.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