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202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대독하고 있다.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을 총리가 대독한 것은 지난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11년 만에 처음이다. 알려진 다른 공식 일정도 없었다. 올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할 때는 정진석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향한 조롱 야유가 쏟아지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도록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불참 이유에 대한 해명도 없다.
대통령 시정연설은 과거에는 임기 중 취임 첫해만 대통령이 하고 다음 해부터는 총리가 대독하곤 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이래 관례로 굳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자신의 탄핵이 거론될 때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직접 했다. 윤 대통령이 얼마 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만남 뒤에 ‘돌 던지면 맞아도 간다’고 한 말은 어디로 갔는가.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 정도가 두려워 국회에 못 간 건 아니길 바란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앞에 두고 훈시하듯 하는 자세를 취한다고 위엄이 서는 게 아니다. 반대로 대통령이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 정도 받는다고 위엄이 훼손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위엄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그런 사람만이 상대편의 조롱과 야유를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달 중순 APEC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남미를 방문한다. 출국까지는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김건희 여사 문제 등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은 해외 순방을 다녀와 이달 하순에나 밝힐 예정이라고 했다가 돌연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7일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1심 결과 등을 본 뒤 입장을 밝히려 했다가 여권 내 기류, 여론 흐름 등이 심상치 않자 계획을 바꾼 걸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했으나 엄청난 세수 결손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연금 의료 노동 교육 등 4대 개혁을 역설했으나 낮은 지지도 때문에 공허하게 들렸다. 시정연설대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회복 속도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국정이 어느 것 하나 쉽겠냐마는 대통령이 자신과 주변의 일로 국정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7일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 내용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