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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기쁨으로 폭발 사고 트라우마 털어낼수 있을것 같아요”[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입력 | 2024-11-05 03:00:00

‘해피700용평도서관’ 개관
1월 1일 밤 가스 폭발로 6명 사상… 옛 도서관 검게 그을린 채 곳곳 깨져
주민들 “다시 행복하게 독서 즐길 것”… 아이들도 “와! 책 많아, 진짜 넓다”




‘펑, 펑, 펑!’

강원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 주민들은 올 새해 첫날을 잊지 못한다. 새해를 고요하게 맞던 이날 오후 9시경.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폭발음이 귓가를 때렸기 때문이다. 큰 화염과 연기가 불과 몇 초 만에 마을을 뒤덮었다.

지난달 31일 새로 개관한 강원 평창군 용평면 ‘해피700용평도서관’에서 지역 아동들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독서하는 모습. 이날 오전 개관식에 앞서 50여 명의 지역 아동들이 가장 먼저 도서관을 둘러봤다(위쪽 사진). 이날 개관식에는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와 심재국 평창군수, 이윤호 KB국민은행 강릉지점장 등을 비롯해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평창=김기윤 기자 pep@donga.com·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제공

지난달 31일 장평리에서 열린 ‘해피700용평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한 주민들은 “지금도 작은 소리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라며 “LPG 가스통만 봐도 떨린다”고 털어놨다. 당시 가스 누출로 폭발 사고를 일으킨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 방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 사고로 주민 1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이재민 30여 명이 발생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일부 피해 주민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사고 지점 근처에 있던 옛 용평도서관도 창문이 깨지고 외벽이 그을리는 손상을 입어 올 초부터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그런데 9개월여 만에 마을 도서관이 장소를 옮겨 새로 문을 열게 됐다. 화마의 상처가 아직 남긴 했지만 사고 이전의 평화로운 마을로 점차 회복되고 있는 것. 이날 주민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도서관 개관식은 마을 축제를 방불케 했다. 마을 사랑방이자 주민들의 배움터 역할을 하던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민들은 간단한 먹거리를 나누며 서로 안부를 물었다. 도서관 외벽에는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꼈다. 개관식을 찾은 주민 최성규 씨(68)는 도서관을 둘러보고 “책 읽는 기쁨으로 폭발 사고의 트라우마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주민들이 아픔을 잊고 다시 행복하게 독서를 즐겼으면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은 화재로 문을 닫은 용평도서관을 올해 4월 작은도서관 조성 사업 대상으로 선정해 KB국민은행,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이전 개관했다. 김수연 대표는 개관식에서 “‘책을 읽으면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40여 년 전국을 다니며 도서관을 건립해 왔다”며 “용평면민들도 이곳에서 책을 읽고 다시 행복을 찾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개관한 ‘해피700용평도서관’은 주민들의 어울림문화센터로 쓰이던 2층 건물의 1층을 리모델링해 333㎡(약 100평) 규모로 자리 잡았다. 일반·유아·아동 도서는 물론이고 최신 문학작품까지 약 8000권의 장서를 비치하고 있다. 도서관을 찾은 심인숙 씨(46)는 “평창은 문화 소외 지역이라 도서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고 책 한 권, 한 권이 귀하다”며 “도서관 문이 닫힌 9개월여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원주, 강릉까지 갔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 기쁘다”고 했다. 심 씨는 도서관 개관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린 두 자녀를 곧 데려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개관식에 앞서 인근 어린이집 아동 50여 명이 도서관을 먼저 둘러봤다. 친환경 자재와 고급 목재로 단장한 도서관을 둘러보던 아이들은 “와! 책 많다” “진짜 넓다”고 환호하며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성인들을 위한 강의실과 학습공간도 별도로 마련됐다.

도서관은 향후 다양한 교육, 강좌 프로그램도 선보일 계획이다. 심재국 평창군수는 “도서관이 주민들의 새 문화 향유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평창=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