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신분석가와 피분석자의 관계는 매우 긴밀(緊密)합니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내밀(內密)한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이입니다. 세상 어떤 사이보다도 마음과 마음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분석의 힘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경계 침범(侵犯)의 가능성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상황에 내재(內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생존을 위해서도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관계는 나와 남, 남과 내가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관계는 맺기도 어렵지만 잘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연결된 모든 것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합니다. ‘사이’라는 말 자체가 ‘거리, 틈, 공간’을 내포(內包)하고 있습니다. 틈이 아예 없으면 밀착(密着), 거리가 짧으면 긴밀, 멀면 서먹서먹한 관계입니다. 유지에 드는 비용은 밀착 관계에서 제일 큽니다. 밀착 관계를 고집하다가 버려서는 절대 안 될 것을 내던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거리 유지와 조절’은 매일, 평생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어려움을 자주 겪습니다. 가족이든 남이든 내가 정한 거리를 흔들어서 간섭(干涉)하거나 침범하려 합니다. 어른이 된 자식의 독립을 용납하지 않는 부모, 직원과의 거리를 지키지 않는 직장 상사의 행위는 모두 간섭이나 침범입니다. 경계를 넘으면 간섭, 경계를 넘어 상대가 위협을 느끼면 침범입니다.
‘담장’은 나와 남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시각적으로 구분합니다. 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출입문’은 내가 허락한 관계만 들이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창(窓)’을 가린다면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담장을 넘어서 들어오면 ‘침범’이고,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출입문을 두드리면 ‘간섭’입니다. ‘창’으로 몰래 들여다보면 ‘감시’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도 자신이 혼자서만 편안하고 안전하게 존재할, 남과 나를 확실하게 안정적으로 구분하는 경계(境界)가 필요합니다. 어울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성찰과 성장에 중요합니다. 관계 유지와 홀로 있기의 균형을 잡아야 삶이 풍족해집니다.
나와 남 사이, 남과 나 사이에서 거리를 적절하게 지켜야 서로의 공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차량과 차량 사이에 거리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접촉 사고, 아니면 대형 사고가 납니다. 경계가 무너져서 불편해진 마음과 몸이 긴장한 결과로 소통에 지장이 생기면 ‘접촉 사고’, 생존에 위협을 느껴서 도망가거나 싸우려고 하면 ‘대형 사고’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