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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80명 진료비, 2명 시술로 벌어” 필러주사 놓는 소아과 의사들

입력 | 2024-11-06 03:00:00

[미용성형 공화국의 그림자]
〈중〉 미용의료 몰리는 필수과 의사




《환자당 수입 1만9000원 vs 9만7000원… 소아과-미용의원 의사의 하루

의료계에선 필수의료의 낮은 수가 때문에 ‘미용 성형 공화국’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료에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필수과 전문의 상당수가 미용 의료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두 의사의 하루를 들여다본 결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환자 한 명당 1만900원을 버는 반면 미용 의원 일반의는 9만 7000원으로 5배 이상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필수과와 미용의료의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소아과에서 일하는 24년 차 전문의와 미용의원에서 일했던 2년 차 일반의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







소아과 24년차 의사 이보람 씨의 하루
환자 87명 보고 한명당 1만9000원 수입
“화장실 시간 줄이려 진료실 옆 새로 지어
고정비 부담에 미용의원 함께 운영한적도”


“아이가 밤새 기침을 했다고요? 입을 ‘아’ 하고 벌려 보세요.”

올해 8월 21일 인천 서구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하는 24년 차 전문의 이보람(가명·54) 씨의 하루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의 기침 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이날 이 씨의 병원에는 오전 8시 40분경부터 기침, 설사 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온 아이와 보호자가 줄을 섰다.

오전 9시에 진료를 시작한 이 씨는 장염에 걸린 16개월 남아를 진료하고 2만300원, 기관지염과 알레르기성 비염 및 급성 부비동염을 앓는 7세 여아를 진료하고 1만2610원, 급성 인두염과 기능성 장 장애를 앓는 4세 여아를 진료하고 1만3240원을 벌었다. 이는 환자가 내는 돈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수가를 더한 것이다.

병원에는 그 밖에도 위장염, 결막염, 급성 상기도감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등이 줄을 이었다. 이날 오후 7시까지 이 씨가 진료한 환자는 총 87명으로 수입은 총 168만9260원이었다. 환자 1명당 약 1만9000원꼴이다.

이 씨는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에 10명가량의 환자를 계속 봤다. 진료를 마친 그는 “오늘 특별히 환자가 많진 않았다”며 “환절기 등에 환자가 몰리면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병원 밖에 있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진료실 옆에 화장실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소아과만으로 수익이 나지 않아 최근까지 바로 옆에 미용의원을 차려 놓고 보톡스, 필러 등의 시술을 진행했다. 그는 “피부와 유사한 물질을 주사기로 피부 밑에 삽입하는 필러 시술은 1cc당 18만 원을 받았다. 이마 등 얼굴 전체에 하면 8cc가량 시술하고 할인을 좀 해주며 100만 원을 받았다”며 “얼굴 전체에 필러 시술을 하는 환자 2명만 보면 하루 종일 아픈 아이들 70, 80명 진료하는 것과 수입이 같은 것”이라고 했다.

최근 호흡기 환자가 늘면서 소아과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미용의원 문을 닫았다는 이 씨는 “임차료와 간호사 급여 등 고정비로만 월 2000만, 3000만 원가량이 나가는데 수가는 물가만큼 오르지 않는다”며 “주위에도 소아과를 접고 미용의료를 배우는 동료가 많다. 갈수록 희귀종이 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아과 의원 의사의 연봉은 2010년 1억2994만 원에서 2020년 1억875만 원으로 2000만 원가량 줄었다.






미용의원 2년차 의사 김송이 씨의 하루
50명 진료하고 한명당 9만7000원 수입
“환자 없는 시간엔 동료들과 티타임도”
월급의사 김씨, 개원의 이씨의 2배 벌어

“지원한 레지던트 전공에서 탈락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올해 3∼7월 경기 화성시의 한 미용의원에서 근무했던 2년 차 일반의 김송이(가명·29) 씨는 9월 초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자신의 하루 진료 기록을 제출했다. 김 씨가 일했던 미용의원은 오전 10시 반∼오후 8시 반 진료를 하는데 필러와 보톡스를 함께 하는 경우 12만 원, 얼굴 레이저 리프팅 풀코스는 12만 원, 초음파 리프팅은 90만 원을 받았다.

김 씨는 “직장 근무를 마치고 오는 20∼40대 여성이 주 고객이다 보니 낮 시간에는 1시간에 3명 정도만 보면서 가끔 동료들과 커피타임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을 합쳐 1시간 반이 보장됐고 손님이 몰리는 오후 6시 반∼8시 반에만 시간당 10명 정도를 시술하면 됐다.

김 씨는 하루에 50명을 진료하고 485만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1명당 낸 돈은 평균 9만7000원이었다. 소아과 전문의 이 씨와 비교하면 환자는 절반가량만 보고 3배 정도 수입을 더 올린 것이다. 진료비는 모두 비급여로 고객이 직접 냈다.

고용돼 일하는 김 씨의 월급은 약 1500만 원으로 이 씨가 병원을 운영해 버는 돈의 2배가량이었다. 미용의원은 상담실장이 1차로 고객을 상담한 후 시술이 진행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직원이 대응하기 때문에 손님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많지 않다.

경쟁이 치열해도 미용성형의원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가격 구조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미용의료에 관심이 많다는 김수아 씨(24)는 “미용시술 비용을 비교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있긴 하지만 현장에 가면 추가금이 붙는 구조가 많아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렵다”고 했다. 병원마다 신기술을 활용한 각종 주사와 시술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며 가격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소아과 전문의 연봉이 줄어드는 것과 달리 미용성형 의사들의 소득은 급증세다. 피부과의원 의사 연봉은 2010년 1억7994만 원에서 2020년 3억263만 원으로 70%가량 늘었다. 성형외과의원 의사 연봉도 같은 기간 1억6640만 원에서 2억3208만 원으로 40%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미용성형 시장 쏠림 현상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미용성형 시장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미용 비급여 시장의 성장 속도, 필수의료 인력 유출 상황 등을 먼저 면밀하게 파악해야 정확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사고 우려-소송 리스크에 필수과 더 기피”



소아과 레지던트 충원율 7년새 75%P↓
산부인과 전공-전임의 47% “분만 안할것”

“지금 생각해도 수술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가 조사를 받고 나니 절단 환자를 받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강홍제 교수는 ‘미용성형 공화국’이 생긴 원인 중 하나로 ‘소송 리스크’를 꼽았다. 중증·응급 환자를 보는 의사일수록 맡은 환자가 사망할 확률이 큰데, 최선을 다했더라도 법적으로 면책이 안 되니 전문의들이 필수과에 남아 있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6년 전 팔이 절단된 환자를 수술했는데 환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해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경찰에서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했다. 또 “혼신의 힘을 다해 수술을 해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필수과 의사들이 교도소 담장을 걷는 상황을 방치하면 미용성형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선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아청소년과가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본다. 신생아 4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숨진 이 사건으로 담당 주치의를 포함해 의료진 3명이 구속되고 7명이 기소됐으나 이들은 2022년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안 그래도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되며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송 리스크까지 불거지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충원율은 2017년 100.9%에서 2024년 25.9%로 크게 줄었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산부인과 레지던트 4년 차와 전임의(펠로)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47%가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는 ‘의료 사고 발생 우려’(79%)가 꼽혔다. 수도권에서 분만 병원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주위에서 소송 안 걸린 산과 의사를 찾기 힘들다. 잘못이 없어도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고 나중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는 강모 씨도 “산과 전문의가 됐지만 아이를 받으며 종합병원에 남기보다 분만을 안 하는 부인과 개원을 택했다”며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항상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에도 법원에선 의사에 대한 거액의 배상 판결 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0월 장이 꼬여 구토하는 신생아를 응급 수술했다가 장애가 남은 사건과 관련해 외과 의사에게 10억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에게 ‘대동맥 박리’ 진단을 못 내린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는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게 소송이라면 계속 일에 애정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소송 리스크로 인한 필수과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배상공제조합 가입을 전제로 중재 과정을 거치면 형사 소송 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를 추진 중이다. 현재는 의료소송 발생 시 민사는 환자가 입증 책임을 지지만, 형사의 경우 과실이 없다는 걸 의료기관이 입증해야 한다. 다만 미용성형은 형사 특례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하지만 환자단체는 “아무리 필수의료라고 해도 형사 소송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과도한 특례”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미용 의사의 하루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두 의사의 진료실, 누가 얼마나 벌까요(https://original.donga.com/2024/dayofdoctors)’로 연결됩니다.


인천=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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