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93〉그림자를 쉬게 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오른쪽)는 지난 삶의 회한으로 괴로워하는 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사진 출처 티캐스트
시인은 남조(南朝) 동진(東晉)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작위를 물려받아 미래가 보장된 처지였지만 권력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큰 시련을 겪었다. 이 시는 영가태수(永嘉太守)로 좌천되었다가 물러나 회계(會稽)에 숨어 살 때 지었다. 송(宋) 문제(文帝)가 세상을 등진 시인에게 친구 두 사람을 보내 설득하려 했지만, 시인은 위와 같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사양했다. 일찍이 장량은 공업을 이룬 뒤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로, 병만용은 많은 녹봉이 달갑지 않아 물러나 살았던 것과 달리, 자신은 본래부터 세상 모든 인연을 끊고 은거하고자 했음을 밝혔다. 동산(東山)은 시인의 선조인 사안(謝安)이 은거했던 산이기도 하다.
산수 유람하길 좋아했던 시인의 시에는 휴식과 관련된 말이 많이 나오는데 ‘휴게’라는 시어가 이 시에서 일찌감치 쓰였다(雖非休憇地, 聊取永日閑). 현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면 그림자를 쉬게 할 필요가 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