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이 선물”이라 주장하는 ‘명태균 게이트’ 갑오개혁은 ‘왕후 국정관여 금지’ 못박았다 대통령실·내각개편 없이 민심 돌릴 수 있나 차라리 김 여사가 특검 수용 결단하시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필리핀과 싱가포르 국빈 방문과 라오스에서 열리는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위해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2024.10.6/뉴스1
“김 여사 남미 순방 가야 되거든.” 이달 말로 알려졌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이 돌연 7일로 당겨지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소리다. 다음 주부터 페루와 브라질에서 다자 외교무대가 잇달아 열린다. ‘조선 제일 사랑꾼’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이번에도 동반할지 말들이 많다. 하지만 국민의 곱지 않은 눈길도 당연하다. 윤 대통령은 순방 전, 김 여사 활동이 외교와 의전에 그친다고 밝힌 뒤 함께 나서고 싶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김 여사는 자랑스러운 외교사절이랄 수 없다. 해외 순방 때 명품 숍에 들러 국민을 낯 뜨겁게 한 적도 있고 9월 체코에선 표절과 탈세 의혹이 있는 영부인으로 현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두 달간 ‘명태균 게이트’와 ‘김대남 사태’로 K정치의 추한 속살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첫째, 우리나라 권력 1순위가 김 여사임이 재차 확인됐다.
둘째, 윤 대통령의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명태균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게 5년을 버틸 내공이 없다고 했다. 국민으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다. “(김 여사가) 명 선생이 이렇게 아침에 놀라서 전화 오게 만드는 오빠가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는 음성 파일도 공개됐다. 이 말을 정말 했다면, 대선 전 “우리 남편은 바보” 녹취록이 절로 떠오른다.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이었다. 이번 담화를 앞당긴 것도 김 여사가 동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국민만 보고 해야 할 대통령담화까지 부인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면, 그게 바로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아니고 뭔가.
김 여사는 지극한 선의를 가진 대통령 부인으로서 남편 일에 관여하는 게 잘못이냐고 할지 모른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발표한 최초의 근대적 헌법 홍범14조는 ‘국왕이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관여함을 용납지 않는다’고 제3조에 못 박아 놨다. 근대국가라면 왕후도 용납되지 않는 국정 관여를 대통령 부인이 해선 안 될 일이다.
국민은 김건희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수사를 통해 밝혀낼 일이지만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아무리 부인일지언정 선출되지 않은 사인에게 공천과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면, 권력 남용이고 대의민주주의 훼손이다. 특히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검 출신 윤 대통령으로선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7일 김 여사 문제를 포함해 이태원 참사와 의료대란 등 무능·무책임·무대책 2년 반에 대해 윤 대통령이 통렬한 사과를 하든 안 하든, 권위와 신뢰는 이미 잃었다. 내각 개편은 그래서 절실하다. 야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현명한 총리를 새로 들이고, 헌법대로 총리 제청을 받아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총리 등을 임명해 행정 각부를 통할케 하면서 민생경제를 살리고 지지율도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김 여사 특검’을 더는 피할 수 없음을 대통령 내외는 깨달았으면 한다. 다수 국민에게 ‘탄핵 트라우마’가 있고, ‘이재명의 민주당’에 정권을 맡기기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서도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원치 않지만 윤 대통령 자신이 대단히 사랑했던 검찰 조직을 망가뜨린 탓에 도리가 없다. 차라리 정무감각 있는 김 여사가 여야 합의 가능한 특검 수용을 결단해 주기 바란다. 잔 다르크처럼 내 한 몸 희생해 나라를 구하겠다고.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