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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본질은 대통령 부인의 국정개입 의혹이다

입력 | 2024-11-06 23:22:00

“공천이 선물”이라 주장하는 ‘명태균 게이트’
갑오개혁은 ‘왕후 국정관여 금지’ 못박았다
대통령실·내각개편 없이 민심 돌릴 수 있나
차라리 김 여사가 특검 수용 결단하시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필리핀과 싱가포르 국빈 방문과 라오스에서 열리는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위해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2024.10.6/뉴스1


“김 여사 남미 순방 가야 되거든.” 이달 말로 알려졌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이 돌연 7일로 당겨지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소리다. 다음 주부터 페루와 브라질에서 다자 외교무대가 잇달아 열린다. ‘조선 제일 사랑꾼’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이번에도 동반할지 말들이 많다. 하지만 국민의 곱지 않은 눈길도 당연하다. 윤 대통령은 순방 전, 김 여사 활동이 외교와 의전에 그친다고 밝힌 뒤 함께 나서고 싶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김 여사는 자랑스러운 외교사절이랄 수 없다. 해외 순방 때 명품 숍에 들러 국민을 낯 뜨겁게 한 적도 있고 9월 체코에선 표절과 탈세 의혹이 있는 영부인으로 현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두 달간 ‘명태균 게이트’와 ‘김대남 사태’로 K정치의 추한 속살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첫째, 우리나라 권력 1순위가 김 여사임이 재차 확인됐다.

“오늘 여사님 전화 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걱정하지 말라고, 나보고 고맙다고. 자기 선물이래.” 정치브로커 명태균의 통화 내용이 맞다면, 김 여사는 대선을 도와준 ‘선물’로 지역구 공천도 하사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다. 선임행정관 출신 공기업 감사였던 김대남은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한남동 라인’을 통해 공천과 공기업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정권을 잡으면 공직과 이권을 가신(家臣)에게 배분하는 전근대적 가산주의(家産主義) 약탈국가로 돌아간 형국이다.

둘째, 윤 대통령의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명태균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게 5년을 버틸 내공이 없다고 했다. 국민으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다. “(김 여사가) 명 선생이 이렇게 아침에 놀라서 전화 오게 만드는 오빠가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는 음성 파일도 공개됐다. 이 말을 정말 했다면, 대선 전 “우리 남편은 바보” 녹취록이 절로 떠오른다.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이었다. 이번 담화를 앞당긴 것도 김 여사가 동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국민만 보고 해야 할 대통령담화까지 부인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면, 그게 바로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아니고 뭔가.

김 여사는 지극한 선의를 가진 대통령 부인으로서 남편 일에 관여하는 게 잘못이냐고 할지 모른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발표한 최초의 근대적 헌법 홍범14조는 ‘국왕이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관여함을 용납지 않는다’고 제3조에 못 박아 놨다. 근대국가라면 왕후도 용납되지 않는 국정 관여를 대통령 부인이 해선 안 될 일이다.

국민은 김건희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수사를 통해 밝혀낼 일이지만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아무리 부인일지언정 선출되지 않은 사인에게 공천과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면, 권력 남용이고 대의민주주의 훼손이다. 특히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검 출신 윤 대통령으로선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윤 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이 없다는 건 나라의 위기다. ‘인위적 인적 개편’이 없다니 대체 무엇으로 국정 동력을 살릴 것인지 통탄할 판이다. 명태균과 관련해 “정치적, 법적,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국민에게 오만하고 대통령에게만 충성스럽게 국회 답변한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통령실부터 전면 개편해야 한다. 한남동 라인이 건재하는 한,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믿을 사람은 1도 없다. ‘텔레(그램) 정치’가 얼마든지 가능해서다.

7일 김 여사 문제를 포함해 이태원 참사와 의료대란 등 무능·무책임·무대책 2년 반에 대해 윤 대통령이 통렬한 사과를 하든 안 하든, 권위와 신뢰는 이미 잃었다. 내각 개편은 그래서 절실하다. 야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현명한 총리를 새로 들이고, 헌법대로 총리 제청을 받아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총리 등을 임명해 행정 각부를 통할케 하면서 민생경제를 살리고 지지율도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김 여사 특검’을 더는 피할 수 없음을 대통령 내외는 깨달았으면 한다. 다수 국민에게 ‘탄핵 트라우마’가 있고, ‘이재명의 민주당’에 정권을 맡기기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서도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원치 않지만 윤 대통령 자신이 대단히 사랑했던 검찰 조직을 망가뜨린 탓에 도리가 없다. 차라리 정무감각 있는 김 여사가 여야 합의 가능한 특검 수용을 결단해 주기 바란다. 잔 다르크처럼 내 한 몸 희생해 나라를 구하겠다고.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