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사회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의료, 연금, 노동, 교육 등 4대 개혁과 관련해 “회의만 말고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빠르게 바꾸라”고 참모와 장관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서 국정 과제의 미진한 성과에 대한 답답함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한 위기의식이 동시에 읽혔다.
4대 개혁은 하나같이 각 분야의 구조를 뿌리부터 바꿔 내는 작업이다. 4대 개혁을 ‘구조 개혁’으로 일컫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개혁을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추진하는 것은 마땅히 응원할 만하다. 그러나 구조 개혁은 필연적으로 입법이 수반돼야 한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법으로 못 박고 시행해야 개혁 열차가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국정’으로 개혁 추진하는 尹
노동 개혁만 살펴봐도 그렇다. 얼마나 일했는지 측정이 어려운 연구원 등을 위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재량근로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노사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합의했다면, 60시간 일했더라도 40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처럼 연구개발(R&D)에 사활을 거는 분야는 재량근로제를 넘어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같은 제도를 원한다. 연구개발자 등 고소득 근로자나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를 아예 면제시키는 제도로, 일본은 2019년 ‘고도(高度)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으로 노동기준법에 도입했다. 이처럼 개혁은 입법으로 제도를 만들거나 보완해야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법률과 시행령의 위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입법 없는 개혁의 한계를 보수 정권에서 이미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도 노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주 52시간제와 저(低)성과자 해고를 맞바꾸는 ‘노동 빅딜’을 모색했다. 한국노총을 참여시켜 2015년 노사정 대타협까지 도출했다. 여기까진 노동 개혁에 성공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와 비슷했다.
하지만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던 저성과자 해고를 시행령도 아닌 정부 지침으로 밀어붙이는 강수를 뒀고 노동계의 합의 파기와 여당의 총선 패배,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폐기됐다. 저성과자 해고를 법제화하자는 노사정의 약속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구조 개혁의 필수 조건은 국회 입법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