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어찌됐든 사과” “육 여사도”… 어리둥절했던 140분 회견

입력 | 2024-11-07 23:30:00

고개 숙이며 시작은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당 초선 의원들이 저한테 전화하면 제가 딱 받거든요”라고 답하면서 전화받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염려를 드렸다”고 사과한 뒤, 그 의미에 대해 “저와 제 아내의 처신이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 것”이라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제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 드린 일들이 있었다.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윤 대통령 본인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제 주변의 일’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며 포괄적인 사과를 한 것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그간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정치권, 특히 여당 대표가 제기한 요구사항에 대해서조차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급기야 ‘국민은 무엇에 대해 사과를 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는 질문까지 나왔고, 윤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좀 어렵지 않느냐. 어찌 됐든 국민께 걱정 끼쳐 드린 건 저와 아내의 처신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심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와 통화한 것에 대해 “매정하게 하는 것이 섭섭하겠다 싶어서…”라고 했다. 그 통화에서 ‘김영선 (공천) 좀 해줘라’고 말한 녹음파일이 나왔는데도 윤 대통령은 “공천에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공천 관련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김 여사와 명 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취임 후 몇 차례 일상적인 문자나 전화를 했다”고만 했다. 두 달 가까이 나라를 뒤흔든 논란인데도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시종 김 여사를 감쌌다. 숱한 의혹들에 대해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많이 악마화한 것”이라고 했고, 김 여사의 역할을 두고도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욕 안 먹고 잘하게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그건 국어사전을 정리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의 ‘청와대 야당’ 역할에 빗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심지어 김 여사가 이번 회견 때 ‘사과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고도 했다. 남편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한 원인 제공자의 조언을 전하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새삼 확인시켜 준 것이다. 나아가 과거 정치 참여 선언 이후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문자 수천 개에 김 여사가 밤새워 답을 보낸 일을 소개하는가 하면 검사 시절부터 쓰던 휴대전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는 식으로 핵심 논점을 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민심과 괴리된 인식이 여전하니 제대로 된 후속 조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야당의 특검 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은 “사법작용이 아닌 정치선동”이라고 단언했다. 국민 다수가 특검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데, 이런 민심은 외면한 채 정쟁이라는 측면을 부각하며 특검 거부 법리만 내세웠다.

김 여사의 활동 중단 요구에는 “사실상 중단해 왔다”고 했고, 특별감찰관 임명조차 “국회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실·내각 개편에 대해서도 “벌써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넘겼다.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도 야당 탓을 하며 “대통령이 국회에 가는 건 의무는 아니고 발언권이 있는 건데…”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며 시작했지만 140분 회견 동안 기존 인식과 태도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변호인에 가까웠다. 부인의 억울함과 공로를 전하기에 급급한 답변에선 반성과 성찰, 쇄신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한데 왜 사과한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임기 반환점을 사흘 앞둔 기자회견이었다. 국민적 의구심이 씻기지 않은 채 앞으로 2년 반도 그 문제를 안고 그대로 가겠다는 것인지 더 큰 의문을 남겼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