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비교하면 주문량 40% 줄어…종잇값 올라도 가격 그대로”
7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골목에 종이를 실은 지게차가 주차돼있다. ⓒ 뉴스1
“한강 작가 책 많이 팔리는 건 출판사만 잠깐 좋지. 인쇄업은 이미 끝났어요. 내 나이 70인데 나도 곧 그만할 겁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인쇄골목. 이곳에는 대학 전문 서적, 강의용 교재, 간행물, 상품 박스 등 다양한 상품을 담당하는 인쇄소들이 몰려있다. 30년 동안 인쇄소를 운영해 온 최광식 씨(70)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탁한 회색을 띠는 인쇄기를 손으로 쓸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 출판업계가 모처럼 화색을 띠며 책을 생산하는 일부 인쇄소들도 덩달아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출판단지 일부 업체들의 ‘반짝 호황’일 뿐 대부분 인쇄소엔 딴 세상 이야기다.
연말 특수도 미미해졌다. 충무로에서 15년간 종이와 인쇄물 배달을 해온 40대 남성 박 모 씨는 “이제 인쇄소 사장님들도 전부 고령이고 인쇄소, 배달 인력 모두 줄었다”며 “겨울이면 다이어리, 상장, 달력 주문이 많았는데 10년 전과 비교하면 40%는 주문량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1968년 세운상가가 들어서면서 종로3가와 퇴계로 3가를 잇는 상가단지가 조성됐다. 이때 인쇄를 다루는 업체들이 충무로 중심으로 입점하며 충무로인쇄골목이 탄생했다. 1990년대 가장 호황을 누리다 2000년대 이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의 ‘1인 이상 인쇄사업체 수 및 종사자 수’ 통계를 보면 인쇄업 사업체 수는 2015년 1만 5679개, 2014년 1만 5333개, 2017년 1만 5558개, 2018년 1만 4541개, 2019년 1만 4103개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날 충무로인쇄골목 곳곳엔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은 채로 텅 비어있는 공간들이 즐비했다. 과거의 활기는 ‘OO 인쇄사’라는 너덜너덜해진 스티커에 흔적으로만 남아있었다.
지난달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의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 인쇄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종잇값이 오르면서 인쇄소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펄프 가격과 해상 물류비가 오르며 가격 상승 압박이 커진 탓이다. 지난달 말 펄프 SBHK(미국 남부산 활엽수) 기준 가격은 톤당 690달러로 전년 대비 20달러(2.99%) 올랐다. 이에 제지업계는 지난 8~9월 인쇄용지 가격을 7% 인상했다.
종이 값이 올라도 인쇄소들은 업체 간 가격 경쟁 때문에 인쇄물 값은 올리지 못한다.
30년간 이곳에서 인쇄소를 운영해 오며 주로 간행물 인쇄를 담당해 온 김명회 씨(68)는 “종잇값이 2년에 걸쳐 계속 올랐지만 물품 값은 못 올린다. 원래도 종이책 수요가 없는 상황인데 물량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종잇값이 오른다고 해도 가격에 반영할 수 없다”며 “제본 등 하청을 주는 후가공 업체들 비용을 어쩔 수 없이 깎으면서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선택하는 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중장년층과 같은 종이책을 선호하는 연령대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기 어려운 소비자가 책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종이책이 있어야 하니 국내 인쇄 산업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