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신학기 맞는 미국의 학교… 8월생, 전년 9월생과 함께 평가 발달과정 1년 더뎌 진단율 높아… 의학-경제학 박사 동시 취득 저자 ‘대통령의 수명’ ‘날씨와 질환’ 등… 대규모 데이터로 의료현장 분석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아누팜 B, 제나 크리스토퍼 워샴 지음·고현석 옮김/424쪽·2만2000원·어크로스
의료 행위는 과학과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이뤄질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우연적 요소가 개입된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 미국에서 8월생 아이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받을 확률이 높다. 사실상 1년 전에 태어나 발달이 훨씬 빠른 전년도 9월생에 비해 산만해 보여서다. 저자들은 이처럼 의료 현장의 변수가 우리의 건강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파헤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는 8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전년도 9월 1일에 태어난 아이보다 364일이 어린데도 같은 학년으로 묶인 데 따른 효과로 분석됐다. 초등학생 때는 약 1년의 차이가 무시할 수 없는 발달 수준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그런데도 이들은 같은 나이로 묶여 동일한 수준의 학업 성취를 요구받는다. 발달 수준에 못 미치는 아이들을 진단하는 의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중에는 ‘대통령들은 업무 수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늙을까?’ 같은 엉뚱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연구도 있다. 물론 가장 정확한 연구방법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대통령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 뒤, 대통령직을 수행했을 때의 수명과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저자들은 17개국의 데이터를 활용해 대통령 또는 총리에 당선된 사람들과 낙선한 2위 후보들의 기대 수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들의 기대 수명이 낙선자들에 비해 2.7년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엄격한 데이터에 의해 시행되는 의료 행위에도 수많은 우연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생년월일에 맞춰 연례 건강검진을 받는 2∼5세 유아들 가운데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의 독감 발병 확률이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높다. 독감 예방주사를 보통 가을에 접종하기 때문이다.
즉,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은 생일쯤 이뤄지는 연례 건강검진 외에 접종만을 위해 다시 가을에 병원을 찾는 빈도가 낮다. 이에 비해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건강검진 때 독감 예방접종도 맞을 수 있어 독감 발병 확률이 더 낮은 것.
예를 들어 2021년 미국 텍사스에 한파가 몰아쳤을 때 국가보험 청구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정전이 48시간 이상 지속되면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기준치보다 9.3배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전에 대응해 무리하게 발전기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높아진 것.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호기심이 유의미한 사실을 발견해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풍부한 데이터와 그래프를 기반으로 쉽게 설명한 점도 몰입도를 높인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