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내 3구역 재건축조합 사무실 모습.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지구를 둘러싸고 2017년부터 지속된 재건축조합과 서울시 간 해묵은 ‘층수 갈등’이 또다시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작년 9월 재건축 밑그림인 ‘신속통합기획안’을 통해 최고 층수를 50층 내외로 정했는데 조합은 이를 77층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한강변 도시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서울시 입장과 지역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사업자 의지가 팽팽히 맞서면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동아일보가 압구정 2~5구역 재건축조합이 계획 중인 개발안을 분석한 결과 현재 8443채인 이 지역은 재건축을 통해 1만725채로 주택 수가 27% 늘어난다. 최고 층수는 3구역이 77층, 2·5구역과 4구역이 각각 70층, 69층이다. 각 구역 조합이 6~9월 제출한 주민 공람안 및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강남구와의 협의안을 종합한 결과다. 1년여 전 서울시 안과 비교하면 주택 수는 1105채 줄고 최고 층수는 27층 안팎이 높다. 신통기획안은 2~5구역을 50층 내외, 총 1만1830채로 계획했다.
아파트 환경 데이터 애플리케이션(앱) ‘더스택’이 양측 개발안의 단지 배치를 비교한 결과 서울시 안은 한강변에서 멀수록, 조합안은 한강에 가까울수록 고층 건물을 세우고 있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조합안에서는 조합원 배정 물량이 한강변 앞에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반분양 물량은 상대적으로 한강변에서 떨어져 있고 층수도 낮다. 일반분양으로 입주할 경우 한강 조망권이 일부 제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측에서 바라본 압구정 재건축 이후 2~5단지 투시도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안(회색 건물), 조합 개발안(빨간색 점선). 자료: 더스택
조합 측은 오히려 도시 경관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중근 압구정 3구역 재건축조합장은 “과거 잠실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재건축의 경우 35층으로 획일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도시 경관을 향상하는 스카이라인이 나올 수 없었다”며 “랜드마크 경관을 위해 아파트 단지 층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실 서울시와 조합 간 힘겨루기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조합은 50층 이상을 주장했다. 이에 압구정 지구단위계획 심의가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3차례나 보류됐다. 서울시는 작년 ‘35층 룰’을 폐지한 뒤 신통기획을 통해 50층 내외까지 허용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각 구역 조합은 그보다 더 높은 층수를 요구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기는 애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특정 구역 내 문제도 중요하지만 서울 시민 전체가 체감할 경관 변화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70층 이상 초고층 단지가 들어선다면 멀리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도시 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단순 특정 단지 문제로 보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지별 심의 기준이 일관성을 갖춰야 하는데 이런 준비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며 “정확한 수치 분석을 기반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