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회견 한마디로 압축하면 “특검만은 안돼” ‘여사 특검’이 궁극적 해법이랄 순 없지만 옹색한 법 논리로 방어만 하는 건 더 문제 특검의 강 건널 지혜와 용기 절실한 시점
정용관 논설실장
“참 서글픈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기자회견에 대한 어느 원로 법조인의 한탄이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세계 10대 강국에 속한다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자기 부인 문제를 놓고 TV 앞에 나와 2시간 넘게 “어찌됐든 사과”한다면서도 “아내 사랑 차원 아냐…” “순진한 면 있어” “앞으로 부부싸움 많이 해야” 등의 발언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 ‘채신없음’에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부인을 대놓고 손가락질하고 낯 뜨거운 온갖 패설을 쏟아내는 것에 분개하고 어떻게든 보호하겠다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건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젊은 기자들과 끝장토론을 하듯 언쟁하며 사사로운 심리를 드러내는 모습에서 발언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진솔했는지 어땠는지를 떠나 씁쓸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최고의 공적 기관인 대통령에 대해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격(格)’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번 회견은 나름대로 깊은 검토를 거쳐 전략적 계산에 따라 이뤄진 것 아닌가 싶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나 논란은 두루뭉술하게 눙치고 넘어가면서 활동 중단이든 뭐든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여사 특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한 대표 측 대응이다. 한 대표 역시 특별감찰관만 내세울 뿐 여사 특검 얘기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검 정국이 어떤 정치적 결말로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칫 정권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경우 한 대표의 정치 생명은 그 길로 끝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윤-한’ 두 사람은 특검 문제에선 같은 운명에 처한 셈이다.
반면 민주당의 특검 공세의 칼끝은 바로 이 지점을 노리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 탄핵, 임기 단축 개헌 등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의 ‘11월 위기’를 넘기기 위한 방탄 여론 조성용이라는 걸 상식적인 국민이 모르지 않는다. 아직은 불 붙지 않는 ‘젖은 연탄’에 매달리기보다는 특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은 기약 없이 1년이고 2년이고 도돌이표처럼 특검 재발의, 거부권 등이 반복되는 양상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이 대표의 신상에 결정적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이런 대치는 지속될 것이고, 나라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럼 언제까지 나라가 ‘특검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나. 여권은 “특검은 곧 탄핵”이란 위기감이 크다고 한다. 태블릿PC 차원을 넘는 육성 녹취가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르고 결국 탄핵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 시각으론 맞는 말이지만 국민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다. 대외활동 중단,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 등은 사후 조치다. 그거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이미 불거진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않은 채 어떻게 ‘정치적 크레디트(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결국 핵심은 대통령 부부가 떳떳하냐는 것이다. 일반인들로선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청와대 야당 노릇’까지 거론하며 당당함을 보여줬는데 왜 특검은 극구 피하는 건지 하는 의아함이 일 수도 있다. 특검 수용만이 정쟁의 악순환을 끊고 난국을 타개할 궁극의 해법인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위헌 시비” “인권 유린” 운운하며 옹색한 법 논리로 방어벽을 치고 나선 건 공감을 얻기 어렵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