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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1심 앞둔 巨野의 노골적 압박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11-11 14:00: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관련 재판에 우산을 쓴 채 출석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법관 입장에서는 상당히 비감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법원을 믿고 국민 여러분이 조용히 좀 기다려주시면 우리나라 전체가 좀 한 단계든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법원을 믿지 못하시고 자꾸 이런저런 압력으로 비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하시면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누가 법관을 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 자리를 빌려서 그런 행태들은 좀 삼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은 “법원의 재판에 대해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의 질문에 작심한 듯 이같이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이 대표의 대북 송금 사건 관련 재판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탄식이었습니다.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이 10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윤 법원장은 재판에 대한 정치적 압박에 대한 우려를 호소하며 “(그러면) 누가 법관을 할 생각을 하겠나”라고 했다. 뉴스1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1심 선고가 이번 주 금요일(15일) 나옵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경기 성남시장 재직 시절 고 김문기 씨를 몰랐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검찰로부터 징역 2년 구형을 받았죠. 공직선거법 사건의 경우 100만 원 이상 벌금형 확정 시 의원직 상실과 향후 5년간 피선거권 제한이 따릅니다. 물론 대법원에서 형이 최종 확정됐을 때 얘기지만, 당장 1심 결과만 이렇게 나와도 ‘사법리스크’를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이 대표 입장에선 부담이 상당할 겁니다. 반대로 벌금이 100만 원 이하로 나온다면 ‘윤석열 정권 조기 퇴진’ 공세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선 날개를 다는 격이 될 거고요.

이 대표는 이달 25일엔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도 앞두고 있죠.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두 개의 재판을 앞두고 거야의 사법부 압박이 나날이 노골화되는 배경입니다. 법원장의 간곡한 호소에도 강성 지지층뿐 아니라 현역 의원들까지 가세한 ‘여론전’이 연일 이어지는 중이죠.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이 10월 8일부터 시작한 ‘무죄 판결 촉구 탄원서명’. 11월 11일까지 한 달여간 모은 탄원서는 강성 친명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취합해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홈페이지 캡처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10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총 101만1449명(11일 오전 9시 반 기준) 서명한 탄원서를 모았습니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을 바라는 탄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대표는 직전 대선에서 현 대통령과 경쟁해 0.73%포인트 차이로 낙선했으나, 대한민국 국민 1614만7738명의 선택을 받은 직전 유력 대선주자”라며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좌우 배석 판사님, 판사님들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른 판단과, 많은 국민의 정의와 상식이 일치하리라 믿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탄원서는 강성 친명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에서 취합해 재판부에 전달할 예정이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 페이스북

이에 질세라 현역 의원들도 ‘이재명 무죄’를 주장하는 릴레이 서명 운동을 온라인상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접 ‘증거조작! 정치기소! 이재명은 무죄!’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뒤 다음 타자를 지목하는 일종의 챌린지 형태입니다. 현역 의원들은 지지자들에게 이재명 무죄 탄원서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독려의 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 페이스북

‘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도 어느덧 이 대표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의 장’이 돼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지난달까지 이어진 국감에선 대놓고 이 대표를 엄호하는 발언들이 이어졌습니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 실무자인 고 김문기 씨를) 모른다’ 한 것은 주관적 인식의 영역이라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합리적인 법 해석”이라고 판사들 앞에서 한 수 가르치듯 말했죠.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이 대표의 무죄를 주장하는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의 ‘방탄 토론회’가 잇달아 열렸습니다. 친명 의원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더 여민포럼’은 지난달 16일과 22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죄 관련 토론회를 두 차례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은 무죄라고 확신한다”는 주장부터 “검찰을 앞세운 합법을 가장한 전대미문의 새로운 독재” “(검찰이) 수사라는 포장 뒤에 숨어 야당을 탄압한다”는 등 검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사법정의특위 위원장(가운데)이 1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정의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사법정의특위는 이 대표의 억울함과 진실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뉴스1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페이스북

민주당도 당 대표 지키기에 당력을 조직적으로 쏟아붓는 모습입니다. 민주당은 11월 5일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전담 대응 기구인 ‘사법정의특별위원회’를 출범했죠. 기존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응하던 검찰독재대책위원회로 부족하다 싶었던지, 박균택 김기표 김동아 이건태 등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 등이 총동원된 별도 특위를 꾸린 겁니다.

위원장을 맡은 전현희 최고위원은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정치 검찰의 수사·기소에 관한 절차적인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사법정의특위는 이 대표의 억울함과 진실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위 첫 회의에선 “머지않아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될 텐데, 설령 무죄가 선고돼도 그 동안 (이 대표가) 받은 정신적 사법적 피해는 어쩌겠나”(박균택 의원)라는 등 무죄를 전제로 한 발언들이 이어졌습니다.

당 지도부의 공개 회의석상에서도 사법부를 향한 노골적인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월 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준호 최고위원은 “오늘은 이 대표 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해 팩트체크를 해보겠다”며 이 대표는 위증을 교사하지 않았으며, 해당 사건이 법리적으로도 위증교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공소장은 ‘거짓 시나리오’”라며 “법원의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받는 공당의 지도부 회의에서 나오기에 과연 적절한 발언인가 싶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이 대표는 어떤 생각으로 이를 지켜봤을까요. 적어도 자제시킬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합니다. 본인도 밤낮없이 스스로 무죄를 주장하며 직접 여론몰이 중이니까요. 이 대표는 최근 한밤 중 자신의 페북에 ‘시신 없는 살인, 위증 없는 위증교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그렇게 스스로 무죄라고 확신한다면 이렇게 세 과시를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러다 사법부가 실제로 무죄 판결을 내리면 그 땐 오히려 “법원이 170석 거야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반대 진영의 반발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할테니까요. 민주당 스스로 명분을 내주는 꼴이 될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월 9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당이 주최한 제2차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장외집회에 참석해 연설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요즘 민주당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장외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1심 선고 다음 날인 16일엔 조국혁신당 등과 손잡고 야 5당 합동으로 대규모 집회를 한다 하죠. 김건희 특검을 명분으로 여는 집회이지만, 판결 내용에 따라 ‘이재명 무죄 환영’ 또는 ‘이재명 유죄 반대’ 집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 동안 민주당은 매번 집회 때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주문처럼 외쳐왔습니다. 지금은 민주당이야말로 민주주의 법치 정신을 다잡아야 할 때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