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외교전문 12건 공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뉴스1
“탈북자 증언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악질 탈북자들을 사회·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여론 작전을 벌여라.”
북한 외무성은 2017년 1월 해외에 있는 북한 공관에 이런 외교 전문을 내려보냈다.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이었던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국내로 망명 신청을 한 지 5개월 지났을 무렵이었다. 국내외 탈북민 단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활발하게 벌이던 시점이기도 했다. ‘방침 포치 건’이란 이 문건에서 북한 외무성은 “탈북자를 우려먹으려는 사소한 시도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처갈기라”며 “적들은 물론 인권기구들이나 제3자들도 탈북자 증언을 들고 다니다가 우리와 상대조차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똑바로 가지도록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 北, “‘전면 배격’ 입장만 밝히고 퇴장하라” 대사에 행동 수칙까지 지시
북한은 외교전문을 통해 유엔을 담당하는 주유엔 대표부 등에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려 할 경우엔 ‘전면 배격’ 입장만 밝히고 퇴장하라”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도 내렸다. 주유엔 북한대표부의 대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비난 발언을 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런 북한 대표부의 이상행동들이 북한 외무성의 세세한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는 것.
북한은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에 반발해 표결을 신청하더라도 자신의 편에 설 국가가 적다고 판단해 결의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이 2016년 2월 재외 공관에 보낸 ‘인권 표결 관련 포치 건’ 전문에는 “적들은 북한을 지지해오던 개도국들을 압박, 회유함으로써 다수국가들이 북한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자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무투표로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은)개도국에게는 북한 인권 결의 표결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고, 이를 통해 양자 관계 발전을 위해 이들 국가(개도국)가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적혔다.
● 김정은 “인권 대결전은 대적투쟁 제1선 전투장”
북한 외무성은 북한의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 쿠바, 중국, 벨라루스, 이란 등을 콕 집어 “공동행동을 통해 강경 투쟁하라”는 방침도 재외공관에 내려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외무성은 2019년 2월엔 유엔 인권이사회를 앞두고 이사국인 쿠바와 사전에 협의하라고 지시하면서 “서방의 인권압력을 받는 국가들을 접촉해 반발심을 자극하고 연대를 형성하라”고도 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불거질 경우엔 일본군 성노예 문제나 유럽 난민문제 등 서방의 인권문제를 오히려 부각하라는 방침까지도 내렸다.
김 위원장은 2016년 1월엔 “올해 열리는 비동맹 정상회의와 외교장관 회의를 활용해 서방의 인권공세를 잘 차단하고 존엄성을 지킬 것”이라고 지시했다. 비동맹운동(NAM)은 주요 강대국 블록에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데, 북한은 2016년 9월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김영남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리용호 당시 외무상을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