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인 비행기들. 뉴시스
‘손님은 신’, ‘오모테나시(환대)’ 등의 인식을 앞세워 고객들을 응대해 온 일본 항공업계가 단단히 뿔이 났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괴롭힘을 뜻하는 ‘카스하라(カスハラ)’, 즉 일본판 ‘고객 갑질’ 때문이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올해 6월 일본의 대표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JAL)은 공동으로 ‘카스하라에 대한 방침’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카스하라에 대한 정의와 사례 등을 밝히면서 이에 적극 대응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일본 양대 항공사의 움직임에 공항도 동참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나리타 공항은 일본 공항 최초로 ‘나리타 공항의 고객 갑질에 대한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카스하라 발생 시 의연하게 대처한다”라는 문구를 넣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본 관공서 등에서는 직원 명찰에 이름을 쓰지 않고 성이나 닉네임을 쓰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상징하던 명찰이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해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늘어서다.
2021년 전(全)일본교통운수산업 노동조합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6.7%가 “최근 2년 내 승객의 괴롭힘으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교통업계 직원 2명 중 1명은 고객 갑질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셈이다.
한국공항공사와 국내 항공사 등도 ‘고객 응대 매뉴얼’ 등을 통해 고객 갑질에 대응하고 있다. 고객 갑질 대응 지침이나 피해 직원에 대한 대책이 일본보다 더 구체적이다. 그러나 공항과 항공사를 이용하는 고객 대부분은 이런 매뉴얼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도가 지나치거나 규정에 어긋나는 요구를 계속하면 공항 서비스 이용을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모른다. 이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객이 우선이라는 분위기가 강해 갑질에 매뉴얼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마도 이 회사의 임원진은 직원들을 지켜야 회사가 영속함은 물론이고, 그래야 안전한 교통서비스도 계속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카스하라는 항공을 비롯해 모든 교통수단에서 결국엔 승객인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