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증이란…유형과 치료 방법은
비행공포증. 출처=게티이미지
#1. 대전에 사는 정모 씨(34)는 12월 가족여행을 앞두고 설렘보단 걱정이 크다. 과거 동남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극심한 난기류를 만난 뒤 비행기 탑승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탓이다. 당시 기내는 심하게 흔들렸고 급강하까지 했다. 이후 두 차례 비행기를 더 탔지만 비행공포증은 더욱 심해졌다. 병원에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소용 없었다. 기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정 씨는 “비행기 사고 확률이 극히 낮은 건 알지만 나에게 일어나면 100% 아니냐”며 “여행이 다가올수록 비행기 탑승에 대한 걱정 뿐”이라고 말했다.
#2. 공황장애가 있는 김모 씨(43)는 최근 업무차 해외를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불안 증세가 평소보다 극심하게 나타났다.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답답함이 느껴졌고, 그렇게 시작된 불안 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부터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머릿 속에는 당장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정신까지 아득해지는 느낌에 쓰러지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고. 김 씨는 “다행히 비행시간이 길지 않아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버텼다”며 “하지만 3주 뒤에 또다시 해외 출장이 잡혀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항공기=설렘’. 최근 한국관광공사 발표에 따르면 여행객들은 항공 여행에서 설렘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미디어에서 교통수단과 여행 관련 키워드를 동시에 언급한 717만여 건의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그런데 이 설렘이 ‘비행공포증’을 앓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다. 이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망설이거나 항공권을 예약했다가 출발 전 취소하기도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탑승한 이들도 비행 시간 내내 불안에 떤다. 여행의 시작점인 기내에서부터 불쾌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동차보다 안전한 항공기…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걸까
비행공포증. 출처=게티이미지
통계상 비행기 사고는 물론 이로 인한 사망 확률은 지극히 낮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안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업용 항공기 이륙 100만 건당 사고 횟수는 2022년 2.05회에서 지난해 1.87회로 줄었다. 항공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도 2022년 10억 명당 50명에서 지난해 17명으로 감소했다. 그런데도 단순비행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항공기가 추락할 것 같다’고 걱정한다. 비행공포증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상민 강남연세필클리닉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한데도 (사고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아닌 조종사가 갖는 데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행공포증 환자들은 증상이 발현된 결정적 이유로 ‘평소보다 심한 난기류 경험’을 주로 꼽는다. 비행기를 잘 탔던 사람도 ‘예고 없이’ 비행공포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세계 항공사고 중 난기류 사고 비중은 53%인데, 최근 3년으로 살펴보면 61%로 증가했다. 기후변화로 난기류가 급증한 탓이다. 다만 난기류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승객이 숨지거나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올해 5월 싱가포르 항공기가 난기류를 만나 기내가 아수라장이 된 일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했으나 직접적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급강하한 항공기는 큰 사고 없이 비상 착륙했다.
항공사 관계자도 항공기 사고를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현직 항공사 기장인 김 씨(37)는 “난기류로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은 굉장히 희박하다”며 “비행기 자체가 위험하다기 보다는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 벨트를 매지 않아 위험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비행공포증 환자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뭘까. 이 원장은 “자동차도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심하게 흔들리는데 땅이 차를 지탱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비행기는 날개가 양력을 받아 공중에 뜨는데 이 힘은 우리가 볼 수 없어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기내에서 불안을 줄이려면…유형에 따라 방법도 다르다
비행공포증. 출처=게티이미지
비행공포증은 중증도나 유형 등에 따라 치료법도 다르다. 긴장하고 불안해 하면서도 비행기 탑승에 큰 문제가 없으면 ‘경증’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음악을 듣거나 향수 냄새를 맡는 등 오감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증상을 해소할 수 있다. 복식호흡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몸의 긴장을 낮추는 법도 도움이 된다. 개그맨 양세형은 야한 생각으로 공포를 이겨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방법은 정공법엔 해당하지 않지만 불안을 자극하는 생각을 멈춘다는 점에서 일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 뇌는 정보처리량이 한정돼 있는 만큼 ‘걱정과 우려’보단 다른 생각의 지분을 늘리라는 것이다.
비행기를 꼭 타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타지 않거나 아예 못 타는 사람들은 비행공포증 ‘중증’으로 분류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항공여행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유형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복용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미미하다. 교육과 상담을 통해 항공사고에 대한 왜곡된 인지를 개선하고, 항공시스템을 신뢰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불안장애를 가진 유형은 증상 조절을 위한 호흡법과 근육이완법 교육이 수반된다. 이후 폐쇄·고소 공간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면서 적응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행공포증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비행공포증을 앓는 일부는 “비행기에서 차라리 자려고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공포가 수면제를 이겼다“ ”전날 일부러 밤을 샜는데도 비행기를 타니 무서워서 잠이 하나도 안 오더라” 등의 이야기를 종종 한다. 이 원장은 이러한 방법에 대해 “수면제는 단거리 비행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밤을 새는 것도 비추천한다”며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탑승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