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을 했던 A 교사는 시험 다음 날 낯선 전화를 받았다. “나 변호사인데, 당신이 내 딸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당신 인생도 망가뜨리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A 교사는 전날 한 여학생이 시험 종료 벨이 울린 뒤에도 답안지를 마킹하는 부정행위를 하자 이를 제지했는데 그 학생 아버지가 걸어온 협박 전화였다. 며칠 뒤엔 수험생 어머니까지 학교로 찾아와 ‘A 교사 파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올해부터 수능 감독관들이 이름이 아닌 일련번호가 적힌 명찰을 차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년 수능 후엔 수험생들 민원이 수백 건씩 쏟아진다. “감독관 잠바가 바스락거려 신경이 쓰였다”부터 “감독관이 한곳에 너무 오래 서 있어 방해가 됐다” “자꾸 돌아다녀서 집중이 안 됐다”는 상충되는 불만까지 가지각색이다. 극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수험생들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교사들은 감독은 하되 ‘공기’처럼 존재하기 위해 기침도 참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다.
▷수능 감독관은 보통 3교시, 많게는 4교시를 들어간다. 한 교시마다 70∼100분이다. 시험 시간을 칼같이 못 맞추거나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집단 커닝 같은 부정행위라도 벌어지면 징계를 받을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점심시간은 50분인데 앞 교시가 지연되고, 뒤 교시 시작 10분 전부터 대기하려면 20∼30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이러니 매년 11월 찾아오는 수능 감독 업무를 교사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보통 저연차 순으로 차출되고, 고3 자녀를 둔 교사들은 감독관에서 제외돼 부러움을 산다.
▷중고교 교사들은 대학이 학생을 뽑기 위해 치르는 수능에 왜 우리만 동원되느냐고 불만이다. 응시생의 35%가량이 N수생이니 대학 교직원들도 감독을 나눠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직원들은 그들대로 수시전형을 관리하느라 여력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연세대에선 논술고사 감독관이 시험 시간을 착각해 문제지를 잘못 배포하는 바람에 시험 무효 소송과 경찰 수사로까지 번졌다. 무서워서 감독관 하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시험 한 번에 청춘들 인생이 걸린 우리의 과열 입시가 감독관을 ‘극한 직업’으로 만들어버렸다. 수능일인 오늘(14일)은 52만 명 수험생 못지않게, 7만 명의 감독관에게도 고단한 하루가 될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