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코스피 2500선·코스닥 700선이 깨지고, ‘대장주’ 삼성전자가 5만 원 선을 위협받는 등 국내 증시가 수렁에 빠졌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만 해도 20조 원 수준이었던 코스피·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은 이달 들어 15조 원대로 쪼그라들고, 코스닥지수는 2개월 만에 장중 700선이 붕괴됐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각각 2417.08, 689.65, 원·달러 환율이 1406.90원으로 표시돼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미국 ‘트럼프 2기’의 높은 파도가 한국에 밀려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인플레이션 충격이 가시나 싶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촉발될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신3고’가 다시 덮칠 기세다. 제대로 대처 못 하면 정부의 기대대로 ‘수출 톱5’에 들기는커녕 복합 불황의 물결에 휘말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다.
어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10원을 넘어 2년여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전날 2,500 선이 무너진 코스피는 2,417.08까지 밀려 1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트럼프의 공약대로 한국 수출품에 10∼20% 보편관세가 적용되고, 중국산에 60% 관세를 물릴 경우 대미, 대중 수출 비중이 각각 20%나 되는 한국은 이중의 충격을 받게 된다. 이에 따른 우려가 선제적으로 반영되면서 원화 가치와 한국 주가는 다른 나라보다 급락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관세 인상이 빨라질 경우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게다가 고환율은 에너지·원자재·농축산물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품 물가를 높여 안정세를 찾아가던 물가를 다시 자극하고, 침체된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에 우리 기업들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인공지능(AI) 산업은 미국이, 전기차·배터리는 중국이 앞서가는 가운데 메모리반도체 등 한국이 선두인 몇 안 되는 부문에서마저 경쟁국의 추격으로 수출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역대 최고 수출’ ‘물가 조기 안정’ ‘최고 수준 고용률’ 등을 강조하며 연일 임기 전반부 성과를 홍보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는 두 달여 뒤면 수출 충격이 가시화돼 일자리가 줄고, 물가 불안으로 서민 장바구니가 부실해질 공산이 크다.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을 앞두고 긴장감을 보이지 않는 정부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