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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의료취약지 자원한 시니어 의사의 호소

입력 | 2024-11-14 23:06:00

전북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임경수 소장이 7일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에서 열린 ‘국민건강의 미래, 시니어 의사와 함께 논하다’ 심포지엄에서 의료 취약지역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지방의료의 현실은 정말 처참하다. 아프리카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제발 이곳에 한 번씩 와서 눈으로 직접 봐주면 좋겠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달 7일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에서 ‘국민건강의 미래, 시니어 의사와 함께 논하다’를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임경수 소장(67)은 이 자리에서 “국내 의료 취약지역의 의료 수준이 1970, 80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임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한 뒤 2022년 정읍아산병원장을 지낸 응급의학과 베테랑이다. 그는 정읍아산병원장을 마친 후 더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대표적 의료취약지인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소장이 됐다.

서울보다 큰 정읍시에는 보건지소 15곳이 있는데 공중보건의사(공보의)는 9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의료공백 사태로 3명이 차출돼 다른 지역으로 가고 현재는 공보의 6명만 남은 상태다.

임 소장은 “시니어 의사로서 의료 취약지 주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보건지소장을 택했지만 현실적 벽은 높았다”고 돌이켰다. 먼저 보건지소는 임 소장에게 월급을 줄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보의는 국방부에서 월급을 받는다. 반면 시니어 의사가 보건지소에 일할 경우에는 국방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 임 소장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기 위해 정읍시장에게 찾아가 주 4일, 하루 7시간씩 일하는 조건으로 연봉 4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임 소장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이고 여성이 많다. 버스도 하루에 4번밖에 오지 않는 곳이라 주민들이 대중교통으로 병의원을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며 “고혈압, 당뇨병 등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예방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국내 의사의 평균 연령은 51세로 12년 전(47세)에 비해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특히 필수과 및 공공의료 분야에서 고령화가 특히 심하다. 여기에 더 이상 진료를 하지 않는 비활동의사가 전체 의사의 7.8%를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 부족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의료취약지가 생기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의료 취약지역은 전국 259개 시군구 중 98곳이며 분만 취약지역은 72곳이다. 이런 취약지역에서 55세 이상으로 풍부한 임상경험과 의학지식을 지닌 시니어 의사들이 활약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니어 의사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 의지만으로 의료 취약지를 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정부에서도 최근 임 소장 같은 시니어 의사를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은 시니어의사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시니어 의사가 의료 취약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채용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시니어 의사 인력 매칭 홈페이지인 닥터링크도 조만간 개설한다. 닥터링크를 통해 교육, 등록, 매칭, 채용 등을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1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만 지원할 수 있고 채용지원금 예산 규모도 현재 12억 원 정도로 많지 않다. 오영아 시니어의사지원센터장은 “지역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시니어 의사 수를 조사한 결과 공공보건의료기관 및 수련병원 103곳에서 724명의 의사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특히 내과가 2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상의학과(67명), 소아청소년과(53명), 마취통증의학과(51명), 외과(49명), 응급의학과(41명) 순이었다”고 했다.

박재현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조사해 보면 상당수 의사들은 은퇴 후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한다. 또 급여가 좀 줄어도 여가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한다”며 “다만 가족과 떨어져야 하고 지역 인프라가 열악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시니어 의사가 의료 취약지로 향하게 하려면 사람을 좋아하는 의사를 파악해야 하고, 선후배끼리 모여 회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해 주는 환경도 필요하다. 임 소장은 “귀촌 생활과 봉사를 하면서 같이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 12명이 있다 보니 행복할 따름”이라면서도 “정부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1차 의료 전달체계를 복원할 방안을 더 고민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뜻이 있는 시니어 의사들을 의료 취약지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