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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희준]年1500명 고급인력 美로 빠져나가는 나라

입력 | 2024-11-14 23:09:00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돈도 사람도 한국을 등지고 미국을 향하고 있다. 개미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지난 2년간 600억 달러 늘어나면서 이달 초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트럼프 당선인의 기업 친화적 공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개선되면서 국내 개미들의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트렌드를 잘 이해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국내 주식 시장에서의 이탈과 미국 주식 시장으로의 유입이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증시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한국 AI 인재 등 美 이민 비자 발급 급증


뿐만 아니라 미국이 석박사급 이상의 해외 고급 인력과 가족에게 발급하는 취업 이민 비자를 5684명의 한국인이 지난해에 발급받았다. 4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대략 1500명 정도의 고급 인력이 미국으로 빠져나간 셈이다. 인구 대비 발급된 비자 수는 인도와 중국의 10배가 넘는 세계 1위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분야의 고급 인력 유출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AI 분야의 인재 40%가 해외로 떠났으며, 대부분은 국내 기업과 비교해 3배에 달하는 연봉과 함께 성과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지급하는 미국의 빅테크행을 선택했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와 나눠 먹기 식 보상 체계를 개선해 고급 인력에 대한 임금 수준을 개선하는 노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를 한국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왜곡된 평등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규제들로 인해 자본 시장과 노동 시장이 경직되면서 한국은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의 진보에 의한 시장의 변화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끊임없이 창업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과 달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 대부분은 1960년대 이전에 창업되었다. 삼성, 현대, SK, LG 등의 기업에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한국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을 통해 자본 시장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혁신의 노력이 시장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역동적인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고급 인력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기 위한 대학의 역량 강화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값 등록금 규제에 묶여 15년째 동결된 등록금 수준으로는 첨단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반 시설 확보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호봉 중심의 교원 임금 체계와 기업과 비교해 현저하게 낮은 임금 수준으로는 첨단 분야의 교원 확보와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뚜렷한 비전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설익은 인재 양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나눠 먹기 식 예산 집행을 통해 대학을 획일적인 틀 속에 가두기보다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학령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에도 불구하고 법정 비율에 따라 획일적으로 투입되어 남아도는 초중고교 교육 예산을 줄이고 대학 교육 예산을 늘려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의 자율적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교육개혁 통해 인센티브 개선돼야


하지만 이공계 첨단 학과로 유입되는 우수한 고교생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 편중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첨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도, 길러낸 인재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도 허사가 될 것이다.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함과 동시에 노동, 교육, 의료 개혁을 통해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기제를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첨단 분야의 이공계 인재들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만들어내고 성과를 만들어낸 만큼 보상받는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