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범유진 등 지음/346쪽·1만6000원·안전가옥
범유진 작가의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훌륭한 반전까지 갖춘 추리 공포물이다. 귀신이 나오긴 나오는데, 사실 공포의 중심은 직장 내 위계다. 주인공은 계약직이기 때문에 ‘막내’ 취급조차 받지 못한다. 사수는 팀 내 이간질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팀장은 계약직에게는 케이크 한 조각도 아까워하면서, 계약직에게 치근대면 입맛에 맞는 사내 연애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약직은 인격도 감정도 없다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는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자기 사업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찍어 올릴 사진의 배경 정도로만 여긴다. 다들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점이다.
정보라 소설가
결국 생계의 절박함이 공포의 핵심이다. 김혜영 작가의 ‘오피스 파파’는 그런 점에서 가슴 아픈 환상 공포물이다. 가정에서 학대당하며 자란 주인공은 간신히 취직하자 이제 직장에서 상사의 언어적, 정서적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학대당하는 미성년 여성이 집을 나왔을 때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주인공이 자신을 탓하며 무너지는 모습마저 학대와 폭력의 결과인데, 주인공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혜진 작가의 ‘컨베이어 리바이어던’도 같은 맥락에서 귀신보다 자본주의가 더 무서운 현실을 고발한다. 초고속 배송을 넘어 ‘클릭하자마자 도착’ 등 광기에 찬 경쟁을 위해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쥐어짜이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인간 소외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이 사람을 휘두르게 된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오피스 괴담’의 작가들은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 특유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직장에서 남의 생계를 주무르는 권력 관계로 발전할 때의 공포를 생생하게 그린다. 연말 회식이든 마감이든 직장의 압박이 커지는 시기를 맞이해 공감의 눈물을 흘리며 읽어볼 만한 작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