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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선도자처럼 전쟁도 선공이 유리”… 이스라엘-아랍 ‘기습의 악순환’[권오상의 전쟁으로 읽는 경제]

입력 | 2024-11-17 22:57:00

게임이론으로 본 선제공격
“선공 이익, 비용보다 클 때 전쟁”… 한니발-나폴레옹도 ‘선공의 명수’
1967년 이스라엘 공군기들 기습… 이집트機 304대 속수무책 파손
1973년엔 이집트-시리아가 기습… 양면 공격에 이스라엘 코너 몰려




1973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수세에 몰리자 미국은 무기를 공중 수송해 지원하는 ‘니켈 그래스’ 작전을 폈다. 미 공군기에서 M60 탱크가 하역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973년 10월 6일 오후 2시, 이스라엘은 각각 남과 북에서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선제 협공을 받았다. 그날은 이스라엘이 가장 전쟁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유대교의 가장 큰 성일인 욤 키푸르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유대인은 하루 종일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속죄와 회개를 신에게 바칠 의무가 있었다. 게다가 그날은 이슬람교의 성월인 라마단에도 속했다. 무함마드가 꾸란을 계시 받은 시기를 기념하는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신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준수해야 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공히 성스러운 날로 치는 날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만큼먼저 공격을 하기에 어쩌면 최고로 좋은 날이라고 볼 면도 있었다. 전쟁에서 선제공격이 유리한지 아니면 방어가 유리한지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예사로운 이해는 선공이 유리하다는 쪽이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역사상 유명한 군인들은 거개 공격으로 이름을 남겼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 13세기 몽골의 보르지긴 테무친, 19세기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예외 없이 공격을 주도해 승리를 구가했다.

일례로, 한니발은 군대의 행군이 불가능하다던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의 본거인 이탈리아 반도로 쳐들어가 기원전 218년 트레비아, 기원전 217년 트라시메네, 기원전 216년 칸나에에서 차례로 로마군을 분쇄했다. 특히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는 전례가 없는 8개 레기온을 동원하고도 최고 사령관인 2명의 콘술을 포함해 약 8만 병력 중 7만 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는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 이후 “한니발 아드 포르타스!”, 즉 “한니발이 문 밖에 와 있다!”는 말은 로마와 이탈리아에서 아이들을 겁줄 때 쓰는 격언이 되었다.

알고 보면 공격의 이로움은 일방적이지 않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공격 부대의 병력이 수비의 최소 3배가 되어야 한다는 군사 교리를 들어 봤을 터다. 미국 육군의 야전 교범에 나오는 이러한 3 대 1 원칙은 수가 같다면 공격이 방어보다 불리하다는 걸 방증한다. 기원전 6세기 오의 손무는 한술 더 떠 공격하려면 아군 병력이 적군의 5배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인에게 덜 알려졌을 뿐 방어로 이름이 높은 군인도 적지 않다. 가령 퀸투스 파비우스는 칸나에 전투 후 카르타고군을 지구전과 소모전으로 상대해 결국 로마를 지켜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르제프에서 1년 넘도록 독일 9군을 지휘해 병력이 두 배 이상인 소련군의 공세를 저지한 ‘방어 사자’ 발터 모델도 방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하도 소련군의 피해가 컸던 탓에 당시 전투는 르제프 고기 분쇄기라는 별칭도 붙었다.

비즈니스 세계의 많은 부분은 전쟁과 군대를 보고 따라 한 결과다. 가령 경영 전략으로 번역하는 영어 단어 스트래티지는 고대 그리스 군대의 최고 지휘관을 뜻하는 스트라테고스에서 유래했다. 또한 특정 산업이나 시장을 앞장서서 개척하는 선도자와 뒤따라가면서 빠르게 베끼는 추격자 사이의 관계는 전쟁의 공격 및 방어와 일대일 대응 관계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에서 선도자와 추격자의 대결은 일방적이지 않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중 수에즈 운하 근처에서 파괴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탱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먼저 공격하는 이점이 실제로 크다면 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한 가지 원인일 수 있다. 경제학의 게임 이론에 의하면 선제공격으로 올라가는 경제적 이익의 기댓값 증가분이 전쟁 비용보다 크면 먼저 전쟁을 일으키는 게 합리적이다. 이러한 전쟁을 가리켜 기습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한 1973년의 전쟁은 말하자면 기습 전쟁이었다.

1967년과 1973년 두 차례의 중동전쟁은 모두 기습으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1967년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 역시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 중 이스라엘 북부 사령부 회의 모습. 북부 사령관 이츠하크 호피 소장이 지도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973년 전쟁은 보복 전쟁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 전인 1967년 6월 5일 오전 8시 45분, 이집트는 예고 없이 이스라엘 공군기 183대의 공습을 받았다. 당시 이스라엘 공군기 수가 모두 196대였으니 그야말로 올인이었다. 남은 13대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시리아와 요르단의 공습을 요격하는 임무를 띠었다. 196대의 이스라엘 공군기는 모조리 미라지 III나 미스테르, 우라강 등과 같은 프랑스제였다.

이집트 공군의 비행장과 대공 미사일 기지를 목표한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최신 소련 전투기인 미그 21도 보유한 이집트 공군은 제대로 힘 한번 못 써 보고 197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곧바로 이어진 2차 공습에서 107대의 항공기가 추가로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공군과 해군은 사흘 뒤 공해 상에 있던 미국 해군의 정보함 리버티도 공격해 34명을 죽이고 171명을 다치게 했다.

이집트 공군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거의 모든 항공기가 활주로를 떠나지도 못한 채 파괴된 덕에 소중한 조종사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제공권을 뺏긴 이집트를 위시한 아랍 국가들은 같은 해 6월 10일 굴욕스러운 조건으로 휴전할 수밖에 없었다. 즉 1973년 전쟁은 절치부심한 이집트와 시리아가 되갚아 줄 차례였다.

잘 준비해 온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선제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의 양면에서 동시에 전투해야 한다는 곤경이 컸다. 게다가 공중에 뜬 이집트 공군기는 괄목상대할 적이었다. 가령 10월 15일 수에즈 운하 근방의 사이드 항구를 공습한 156대의 이스라엘 공군기는 80대의 이집트 공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두 배나 진배없는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고작 7대를 격추하면서 17대를 잃었다.

양면 전쟁을 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처지는 한마디로 암울했다. 무엇보다도 무기와 탄약의 소모가 격심했다. 각종 무기를 이스라엘에 팔아 돈을 벌던 프랑스는 이미 1967년부터 무기 공급을 중단했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 했던 “아랍 국가를 선제공격하면 더 이상 무기를 팔지 않겠다”는 경고를 이스라엘이 무시한 탓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대로 가다간 쏠 포탄이 곧 바닥나 그냥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될 지경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10월 8일, 안달이 난 이스라엘은 핵폭탄을 미국산 전투기인 F-4 팬텀과 자국산 지대지 미사일 예리코에 장착했다. 이는 너 죽고 나 죽자는 물귀신 전략처럼 보일 수 있었다. 막상 이스라엘이 핵폭탄을 쏘고 나면 남아 있는 아랍 국가들이 소련이 제공할 핵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초토화할 건 분명했다. 그건 회사들 간의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가격 전쟁과 다르지 않았다.

장착된 핵폭탄의 수를 13개로 한 건 또 다른 신호였다. 개신교 국가인 미국의 심정을 건드려 보려는 의도였다. 10월 9일, 미국은 작전 니켈 그래스를 개시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탄약과 무기를 무한정 공중 수송하는 작전이었다. 심지어 미국 공군의 3개 전투비행단이 직접 이스라엘로 날아가 자신들이 타던 F-4 팬텀을 배달하고 돌아갔다. 결국 양측의 전황은 모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말았다. 1973년 10월 24일, 전쟁은 끝났다.

먼저 공격하는 이점이 크다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게임 이론의 결론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두 상대방이 모두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할 때, 전쟁을 통한 이익의 기댓값보다 양쪽 모두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협상안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즉 전쟁은 전쟁을 치르는 비용이 들기에 효율적이지 않다. 정치학은 이를 두고 ‘전쟁의 비효율성 퍼즐’이라고 부른다. 달리 말해 경제학의 게임 이론으로는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