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전부터 尹 골프” “외교 위해 준비” 거짓 해명이라면 큰 문제 외신들도 보도, 안할 수 없게 된 골프 외교 어설픈 ‘아베 따라 하기’는 부메랑 될 수도
천광암 논설주간
“군 통수권자가 군 시설인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14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잘못된 논리다. 골프 인구가 600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 사인의 골프를 놓고 시시비비를 따질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서상 공인은 다르다. 누구와 하는지, 빈도가 얼마나 잦은지에 따라 큰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설령 단 한 번을 하는 경우라도 삼가야 할 ‘때-장소-상황’이란 게 있다.
작년 7월 전국에 폭우가 내린 가운데 ‘주말 골프’를 해 물의를 빚은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국민의힘이 어떤 처분을 했는지 떠올려 보자. 당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국민의 윤리 감정과 정서에 반하는 행위”라며 홍 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홍 시장은 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지내는 등 국민의힘 정치지도자로서 더 엄격한 윤리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당원이고, 홍 시장보다 더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골프가 적절했는지 논하는 것은 여당의 잣대로도 괜한 시비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확인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나온 야당의 주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8월 24일부터 11월 9일까지 7차례 골프를 했다. 8월 24일의 경우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으로 군 골프가 금지돼 있던 기간이고, 19명이나 사상자가 나온 부천호텔 화재에 대한 추모 기간이었다고 한다. 또 10월 12일은 북한이 쓰레기 풍선 도발을 감행해 군 장성과 장교들이 줄줄이 골프를 취소하던 때라고 한다. 이 시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이 골프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을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윤 대통령의 골프가 한 언론사의 취재망에 걸려들고 보도가 확실해진 시점이 돼서야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의 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골프를 해 온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골프가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트럼프 외교를 핑계로 댔다’는 의심을 대통령실이 자초한 셈이다. 미필적이라도 고의에서 나온 거짓말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실이 선택적 침묵과 석연찮은 해명으로 문제를 키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명태균 게이트에서도 익히 본 패턴이다. 대통령실은 쏟아지는 보도에도 한 달 이상 침묵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폭로들이 나오자 등 떠밀리듯 ‘(윤 대통령이) 두 번 만났고,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막바지 이후로는 통화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만난 횟수도 최소 4차례였고, 취임식 전날 직접 통화까지 한 사실이 얼마 안 가 드러났다.
부적절한 골프 라운딩과 거짓 해명 논란은 용산이 감당해야 할 자업자득 ‘업보’라 치자. 어찌 됐든 국내에서 ‘지지고 볶으면’ 될 일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외신까지 너도나도 보도하는 바람에 기정사실이 돼 버린 골프 외교가 자칫 국익에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골프 외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트럼프 1기에 ‘완결판’을 보여준 아이템이다. 어설프게 해선 괜히 비교만 될 뿐이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당선에 앞서 골프 스윙에 관한 그의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서까지 정보 수집을 했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가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9일 만에 ‘고탄도에 슬라이스 방지’ 기능을 어필하는 50만 엔짜리 금장 드라이버를 선물로 싸 들고 미국까지 직접 날아간 것도 이런 치밀한 사전 준비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끈끈한 브로맨스’를 연출해 보였는데도, 그의 골프 외교가 얼마나 실리를 챙겼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