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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수렁에 빠진 尹 ‘골프 외교’

입력 | 2024-11-17 23:21:00

“트럼프 당선 전부터 尹 골프”
“외교 위해 준비” 거짓 해명이라면 큰 문제
외신들도 보도, 안할 수 없게 된 골프 외교
어설픈 ‘아베 따라 하기’는 부메랑 될 수도



천광암 논설주간


“군 통수권자가 군 시설인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14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잘못된 논리다. 골프 인구가 600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 사인의 골프를 놓고 시시비비를 따질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서상 공인은 다르다. 누구와 하는지, 빈도가 얼마나 잦은지에 따라 큰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설령 단 한 번을 하는 경우라도 삼가야 할 ‘때-장소-상황’이란 게 있다.

작년 7월 전국에 폭우가 내린 가운데 ‘주말 골프’를 해 물의를 빚은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국민의힘이 어떤 처분을 했는지 떠올려 보자. 당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국민의 윤리 감정과 정서에 반하는 행위”라며 홍 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홍 시장은 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지내는 등 국민의힘 정치지도자로서 더 엄격한 윤리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당원이고, 홍 시장보다 더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골프가 적절했는지 논하는 것은 여당의 잣대로도 괜한 시비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확인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나온 야당의 주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8월 24일부터 11월 9일까지 7차례 골프를 했다. 8월 24일의 경우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으로 군 골프가 금지돼 있던 기간이고, 19명이나 사상자가 나온 부천호텔 화재에 대한 추모 기간이었다고 한다. 또 10월 12일은 북한이 쓰레기 풍선 도발을 감행해 군 장성과 장교들이 줄줄이 골프를 취소하던 때라고 한다. 이 시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이 골프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거짓 해명 논란은 더 심각한 문제다. 윤 대통령의 골프와 관련한 의혹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통해 지난 9월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경호처장 출신의 김용현 국방장관은 “모른다”로 일관했고, 여당 의원이 나서서 “윤 대통령은 골프를 안 친다”며 ‘역공세’를 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을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윤 대통령의 골프가 한 언론사의 취재망에 걸려들고 보도가 확실해진 시점이 돼서야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의 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골프를 해 온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골프가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트럼프 외교를 핑계로 댔다’는 의심을 대통령실이 자초한 셈이다. 미필적이라도 고의에서 나온 거짓말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실이 선택적 침묵과 석연찮은 해명으로 문제를 키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명태균 게이트에서도 익히 본 패턴이다. 대통령실은 쏟아지는 보도에도 한 달 이상 침묵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폭로들이 나오자 등 떠밀리듯 ‘(윤 대통령이) 두 번 만났고,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막바지 이후로는 통화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만난 횟수도 최소 4차례였고, 취임식 전날 직접 통화까지 한 사실이 얼마 안 가 드러났다.

부적절한 골프 라운딩과 거짓 해명 논란은 용산이 감당해야 할 자업자득 ‘업보’라 치자. 어찌 됐든 국내에서 ‘지지고 볶으면’ 될 일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외신까지 너도나도 보도하는 바람에 기정사실이 돼 버린 골프 외교가 자칫 국익에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골프 외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트럼프 1기에 ‘완결판’을 보여준 아이템이다. 어설프게 해선 괜히 비교만 될 뿐이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당선에 앞서 골프 스윙에 관한 그의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서까지 정보 수집을 했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가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9일 만에 ‘고탄도에 슬라이스 방지’ 기능을 어필하는 50만 엔짜리 금장 드라이버를 선물로 싸 들고 미국까지 직접 날아간 것도 이런 치밀한 사전 준비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끈끈한 브로맨스’를 연출해 보였는데도, 그의 골프 외교가 얼마나 실리를 챙겼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트럼프 당선인은 아주 거칠고 노련한 협상가다. 외교적 무례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멘털’을 흔드는 것은 기본이다. 즉흥적이고 어설픈 ‘아베 따라 하기’로 그를 상대하겠다는 것은 맨몸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용산이 보여주는 게 이런 모습 같아서 걱정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