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이렇게 화를 내고 사태가 이 정도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최근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싼 학내 시위로 동덕여대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이 학교 이민주 교무처장(대학비전혁신추진단장)은 15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녀 공학 논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단장은 공학 전환 논의가 최초로 언급된 것으로 알려진 ‘비전2040’의 총 책임기구인 대학비전혁신추진단 단장이다. 공학 전환의 대상으로 거론됐던 공연예술대학의 교수이기도 하다.
배 처장이 속한 디지털혁신기획처는 ‘비전2040’ 전략 수립을 담당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민주 동덕여자대학교 교무처장(대학비전혁신추진단장)과 배경재 디지털혁신기획처장(왼쪽)이 15일 오전 본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중 이 단장과 배 처장은 최근 불거진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대한 학교측 입장을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동덕여대 측 “총장, 대외적으로 말씀 잘 안 해”
―사태가 커졌는데 동덕여대 총장은 학생 뿐 아니라 언론 접촉 포함한 대외 노출을 일절 삼가고 있다. 이 자리에 총장은 왜 안 나오셨는지.
―총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학생들 의사가 굉장히 강하다. 직접 소통하지 않는 불투명한 태도가 사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이 단장 “총장하고 학생과의 정례 행사가 11월 중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취소됐다. 그리고 총장님이 이 상황에서 나와서 말씀하시고 인터뷰하시는 게 비통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다.”
―비통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
이 단장 “최고 경영자로서 학생들한테 학교가 불법 점거 당하고, 학사 정상화가 안 된 것 자체가 되게 슬픈 얘기다.”
―그럴수록 소통에 나설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 ‘밀실 논의 비판에 “이게 밀실이면 모든 게 밀실 논의”
―대학 측 첫 해명은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었고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2일 발표 입장문을 보면 9월 27일, 11월 5일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에서 두 차례 방안을 논의했다고 적혀 있다. 어떤 게 맞나.
배 처장 “논의가 되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 드리겠다. 대학비전혁신추진단은 공식 기구가 아니라 임시 연구조직이다. 거기서 유학생 유치 등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이 정도 수준으론 안된다. 정식으로 교무위원회에 올려서 실체가 있는 단계까지는 가야 (학생들) 의견 수렴이 가능한 것이다. 교무위원회에서 결정을 해버리겠다는 게 아니다.”
이민주 동덕여자대학교 교무처장(대학비전혁신추진단장)이 15일 오전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불거진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논란에 대한 학교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학비전혁신추진단’, ‘비전2040’이라는 단어가 이번 입장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전까지 학생들은 이 조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조직에서 남녀 공학 전환이 논의됐다는 점에서 ‘밀실 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 단장 “일반 기업도 프로젝트를 기안하자마자 바로 옆 부서와 논의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틀을 만들고 난 다음에 협조와 허락이 필요하면 그때 이제 공개한다. 여기(대학)도 마찬가지다. 연구팀에서 브레인스토밍하고 절차를 정한 다음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다. 두 번밖에 회의를 안 한 그 정도 결정 사항을 가지고 밀실이라고 그러면 모든 행정업무가 다 밀실이다.”
―학생들이 ‘밀실 논의’라고 오해할만 하지 않은가.
이 단장 “행정 주체가 현실적으로 대학이다. 학생들이 대학 직원이 아닌 이상 매일 같이 업무를 8시간 동안 붙어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내용이 2차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무위원회에서 먼저 얘기하고 교무위 참석자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오면 그때부터 이제 논의가 되는 거기 때문에.”
● “공연예술대선 남학생 필요하단 말도”
―11월 5일 대학비전혁신추진단 2차 회의에서 남녀 공학 전환 관련 논의가 나왔을 때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할 걸 예상했나.
배 처장 “여러 가지 찬성이나 반대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2개 단과대(공연예술대학, 디자인대학)의 발전 방안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생각했던 거는 일단 해당 단과대 학생 의견이 중요하다는 얘기들이 좀 있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의견 조사는 없었기 때문에 교무위원회에서 어느 정도 안건화가 되면 일단 2개 단과대 학생들하고 의사소통부터 하려고 했다.”
이 단장 “이 정도의 이렇게 반발이 예상되느냐고 여쭤보셨는데 예상 못했다. 지금도 황당하다. 사실 이렇게 화를 내고 이렇게 사태가 커질지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아까 말씀한 것처럼 반발을 하거나 반대를 하더라도 전환 논의 대상이 된 두 개 단과대 학생들로부터 얘기가 나오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회의에서 찬성 여지가 높다고 간주된 공연예술대학과 디자인대학에서도 학생들의 농성 참여나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쳤나.
이 단장 “반대하는 것은 이제 개인의 의견이니까 이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의견 수렴은 회의 두 차례 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연예술대, 디자인대 외 다른 학생들은 반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이 단장 “당사자인 공연예술대학 같은 경우는 연극 등을 가르친다. 그래서 남자 배역 없는 게 거기서는 불만족 요인으로 계속 얘기가 나왔다. 남자 배우를 여학생이 해야 되니까. 그래서 그런 취지의 얘기가 몇 년 동안 나왔던 상황이라 그렇게 크게 반발하리라고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새 ‘젠더 프리(남녀 성별을 나누지 않고 자유롭게 배역을 맡는 것)’라는 개념도 도입되고 있다. 여대의 특수성 살릴 수도 있을 듯 한데. 그게 지장이 될 정도로 큰 문제라는 얘기가 많았는지.
이 단장 “요즘 와서 여자가 남자 역을 하는 게 회자 되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남녀 간의 멜로를 연기하거나, 아니면 어떤 배역을 맡는데 여자가 남자 역을 한다고 하자. 그럼 이렇게 연기하는 당사자 학생들도 약간 김이 좀 빠진다 사실.”
―일부 단과대만의 문제라기보단 동덕여대 전체의 문제가 아닌지. 동덕여대가 동덕대로 바뀌는 것 아닌가.
이 단장 “명칭 바꾸는 걸 거기서 결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단과대학이 남녀공학이 되면 학교 이름에서 ‘여자’를 빼야 되냐, 아니면 넣어야 되냐 이것 아니냐. 그래서 이제 학생들은 ‘동덕대학교가 싫어요. 동덕여자대학교 졸업하고 싶어’ 이렇게 슬로건을 걸고 있는 상황인데 그거는 (정해진 바가 없다).”
배경재 동덕여자대학교 대학비전혁신추진단 디지털혁신기획처장이 15일 오전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불거진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대한 학교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학생들 거부한다고 철회하긴 어려워”
―명칭도 명칭이지만 사실상 ‘여대’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크다.
배 처장 “그래서 그거를 이제 논의를 해보려는 거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걸 저희끼리 논의하기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근데 논의 자체가 깨졌다. 지금 (학생들이 농성을 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솔직하게 얘기하겠나. 남녀공학 전환에 찬성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자유롭게 얘기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가 있나. 회의록 등 자료를 추가 공개한다든지.
이 단장 “아니다. 검토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자료를 공개하는 등 조치는 불법 시위를 해결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의 입장은 이렇다.”
―불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시는지.
이 단장 “기존처럼 학생들이 요구 사항이 있어서 대자보 붙이는 것 정도를 불법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도 불법 게시물 게시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물 파손 등이 너무 심하다. 수업 방해 등 학사 행정에서 여러 부작용들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있다.”
―동덕여대는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여유가 있는데 ‘재학생 위한 시설 투자를 우선시하지 않고 왜 공학 얘기부터 나오냐’ 이런 얘기도 있었다.
배 처장 “아마 학생들의 주장은 ‘아직 우리 대학이 경쟁률도 높고 재정 자립도도 높은데 왜 굳이 이런 선택을 하려고 하느냐’가 핵심일 것 같다. 하지만 학령 인구 감소와 같은 위기가 실제로 학교까지 왔을 때는 사실 너무 늦은 거다. 학교 입장에서는 그 전에 ‘장기적으로 플랜을 세우고 어떻게 경쟁력을 세울까’라는 과제가 있다.”
―학생들이 생각한 논의 순서와 대학본부가 생각한 논의 순서가 서로 달라 보인다.
배 처장 “아니다. 학생들이 지금 바라는 거는 논의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학생들의 입장은 ‘논의하고 싶지 않다’이다. 제가 계속 학생들을 만나서 ‘이 상황이 정리되면 논의 시작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일관된 주장은 논의 자체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근데 어떻게 논의를 할 수 있나.”
―상황이 격해졌는데 학교 측이 유화적 제스처를 먼저 보여줄 의사는 없는지.
배 처장 “제가 ‘폭력적인 상황이 해제가 되면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겠다’라고 학생들에게 계속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논의 자체를 철폐하라라고 하는 게 사실 우리한테 좀 어려운 숙제다. 대학의 구성 단체가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교직원 등 다양하다. 그들을 어떻게 다 무시하고 그냥 저희가 독자적으로 ”너희들이 반대하니까 우리는 그거 다른 분들한테 묻지도 않고 그냥 철폐할게“라고 얘기할 수 있겠나.”
―학생들이 요구한 ‘논의 철회’의 가능성은 없나.
이 단장 “지금 학생들이 주장하는 게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겠다’이다. 그러면 소멸하도록 아무 조치도 안 하는 것이 학교의 책임인가. 학교 입장에서는 앞으로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 피해 손해배상 청구 여부엔 “책임 묻겠다”
―공학 전환 논의에 대한 앞으로 대학 입장은.
이 단장 “아직 그건 정하지 않았다. 그건 우선 지금 학사가 마비됐기 때문에. 이거 정상화가 되고 난 다음에 그때 이제 결정이나 논의를 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시설 피해 관련한 대책은. 가령, 손해배상 청구같은.
이 단장 “대응책은 아직 생각하고 있다. 근데 그냥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좀 사건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물으려 한다.”
―점거 시위가 시작되면서 외부인 침입과 칼부림 협박글 같은 위협도 있었다.
이 단장 “안타깝다. 물론 학생 행위가 정당하지도 않고 불법적이긴 해도 외부랑 충돌이 예견되면 교수와 교육기관으로서는 당연히 안타깝다. 그런데 저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성신여대 등은 학내 반발이 극심해 공학 전환 논의를 철회했다. 동덕여대는?
이 단장 “대외적으로 학교가 지금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지금 많이 비춰졌다. 이대로 끝나버리면 학교 측 피해가 너무 크다. 그리고 여기서 잘못한 거 사과하면 이제 ‘다시 안 하겠다라고 맹세했구나’ 이렇게 되잖아. 결과적으로 그 선택지 자체가 봉쇄가 되어버리는 것. 그리고 학생들은 총장의 공식 사과를 원하는데, 뭘 어떻게 잘못했다고 뭘 사과를 하라는 건가. 그런 거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단장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안타깝다. 너무 어처구니도 없지만 어쨌든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겐 ‘오해도 풀고 폭력적인 행동을 자제 부탁을 한다’고 하겠다.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찬성 측 학생들에겐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태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차질을 겪는 데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