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현지 시간)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병력들이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한미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군 1만여 명은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전장 곳곳에서 전투에 돌입했다. 러시아군 사상자는 하루 최대 1500여 명에 달한다. 북한군도 참전 규모가 커질수록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미국에서 지원받은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면서 그 핵심 타깃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군은 북한군 사상자의 후송 조치에 소극적일 것”이라고 했다. 신분도 숨긴 채 ‘도둑 파병’된 북한군이 ‘총알받이’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러시아군 내부에서 파병된 북한군을 비하하거나 경멸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이런 기술은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을 무력화하는 ‘핵비수’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다. 미 전역의 주요 도시를 동시에 핵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속셈이다.
그에 못지않게 북한이 대규모 파병으로 손에 쥐게 될 가공할 무기는 ‘실전 경험’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간 우리 군은 북한군에 대한 양적 열세를 질적 우세로 극복할 수 있다고 평가됐다. 병력·장비의 규모는 뒤처지지만, 첨단무기와 장병 사기 측면에서 북한의 물량 공세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3대(代)에 걸쳐 핵 개발에 다걸기(올인) 한 것도 낡아빠진 재래식 전력은 아무리 많아 봐야 우리 군과 주한미군을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이 같은 패러다임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로 실전 경험이 없는 한국군이 현대전에 능수능란한 북한군을 맞닥뜨리는 상황이 현실로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그 기간 전장 곳곳에서 각종 무기의 실전 성능과 데이터, 전술 경험 등을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최신예 자폭·정찰드론을 대거 활용한 근접전 등 최신 군사기술이 북한군에 유입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봐야 한다.
군 당국자는 “김정은이 최대치의 실전 경험을 얻기 위해 파병된 북한군의 최전선 투입을 적극 독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습득한 작전적 노하우는 북한군의 대남 기습전략·전술에 고스란히 반영될 개연성이 크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대한민국 안보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패할 경우 다음 타깃이 한반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대규모 파병으로 북한과 ‘혈맹’이 된 러시아가 유사시 북한군을 도와 한반도 전장에 개입하는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 진영이 북-러 독재자 담합의 ‘현상 변경’ 시도를 좌절시키는 데 한국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외교적 연대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군사적 지원 수위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의 ‘파병 카드’는 한 명의 불량배와 편먹는 대가로 나토 회원국 전체를 적으로 돌려세워 더 혹독한 고립을 자초한 치명적 악수일 뿐이다.
반면 우리에겐 북한 위협의 심각성과 한반도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북-러 야합은 성공할 수 없고,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두 독재자가 깨닫도록 해야 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