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9일)로 개전 1000일을 맞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공정 전쟁’의 대명사로 기록될 듯하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공격용 무기를 제공받았지만 국경 너머의 러시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없고, 자국에 들어온 적에게만 쓸 수 있다. 덴마크 네덜란드가 준 전투기 F-16도 그렇고, 미국의 지대지 미사일(에이태큼스)도 그랬다. “러시아 내부를 때리면 무기 공여국을 교전국으로 간주한다”는 러시아의 엄포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엔 제약이 없다. 1945년 미국의 첫 핵실험 이후 핵무장국은 본토를 공격받은 일이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000일이 지나서야 사거리 300km인 에이태큼스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1차 목표는 러시아 땅 쿠르스크 내 러시아 및 북한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쿠르스크 지역은 영토 20%를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유일하게 러시아 내부로 진격한 곳으로, 러시아는 북한 병사 1만2000명을 이곳에 투입했다. 2022년 2월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방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끈하게 돕지도 않았던 바이든이 퇴임 2개월을 앞두고 이렇게 결정한 건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전쟁 중단’을 공언해 왔다. 트럼프 캠프의 휴전 구상은 ‘지금 위치에서 총을 내려놓고 현재의 전선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는 20년간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방어용 무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도 전쟁 피로감이 커진 건 사실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장기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컸다. 유엔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11만5000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절반쯤 되는 5만7000명이 전사했고, 25만 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와 북한군을 공격하면 푸틴은 보복에 나설 것이다. 여타 전쟁처럼 휴전을 앞두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경선’ 공방은 뜨거워질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군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개전 1000일,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최초 구상과는 정반대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