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숙인 교육 프로그램, ‘희망의 인문학’ 수료생 전시 개최 2008년 도입해 올해 827명 수료 대학 캠퍼스서 합창-글쓰기 수업 자존감 높이고 자립 의지 회복
18일 서울 중구 정동 스페이스 소포라에서 진행된 ‘희망의 인문학 수료생 전시회’에서 수료생 최모 씨가 자신의 글을 서화로 담아낸 액자를 들고 있다. 희망의 인문학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 대표 사업 중 하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가 여행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내년에 6월쯤 날이 따뜻해지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역 앞 노숙 유튜브를 한번 해보려 합니다.”
18일 서울 중구 덕수궁 인근의 스페이스 소포라에서 진행된 ‘희망의 인문학 수료생 전시회’에서 만난 최모 씨(68)가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가 노숙인과 저소득층의 자존감과 자립 의지 회복을 돕기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최근 수료한 그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미술 전시회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답사 여행도 하면서 문득 인생에는 최종 목적지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역전은 기차를 타고 다니기도 편하고 노숙을 해본 저한테 익숙한 곳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떠드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70대에는 유튜버를 한번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 합창·글쓰기 등 인문학으로 내면 치유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 대표 사업 중 하나인 희망의 인문학은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됐다. 소외계층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아 성찰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0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후 10년간 중단됐다가 2022년 다시 사업을 추진한 뒤 2년간 총 696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올해부터는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학 과정은 물론이고 요양보호사, 바리스타, 조리사 등 취업 관련이나 심리상담, 음악, 서예 등의 심리·건강, 문화·예술 분야까지 커리큘럼을 다양화해 총 827명이 과정을 마쳤다.
● 덕수궁 인근에서 수료생 전시회도 진행
올해 희망의 인문학 수료식은 앞서 15일 개최됐다. 수료생들이 직접 쓰고 만든 산문과 석고상, 도자기, 목공예 등 150여 개 작품이 14일부터 18일까지 덕수궁 인근 스페이스 소포라에 전시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자화상을 주제로 쓴 글들에는 “잘 태어났어. 울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라. 배고픈 시절이 지나면 따뜻한 밥을 먹고 살 거야”, “운명은 너의 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지금 50살, 이제는 웃을 수 있고 나눌 수도 있고 사랑할 수 있어. 가난해도 행복하다”, “어린 시절 몸도 허약하고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어려움을 잘 견디고 버텨줘서 대견해” 등 본인을 향한 위로의 내용들이 담겼다. 시는 앞으로도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오 시장은 수료식에서 “여러분의 성취로 서울시가 좀 더 희망이 있고 변화를 꿈꾸는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