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볼트(Northvolt)라는 스웨덴의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을 아시나요. 모르는 분이 많을 듯하지만, 이래 봬도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입니다. 아시아 기업이 점령한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의 자존심을 세워줄 희망으로 촉망받아온 기업이죠.
이 노스볼트가 유동성 위기로 인해 파산 직전 상황에 놓였습니다. 동시에 이게 다 ‘중국 협력업체의 방해공작 탓’이란 음모론도 파다한데요. 단순히 ‘캐즘의 저주’라고만 보긴 어려운 노스볼트 추락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21년 12월 말 노스볼트가 생산했다고 발표한 첫번째 전기차용 배터리 사진. 이는 유럽에서 생산된 첫 전기차용 배터리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볼트는 유럽 배터리 산업의 희망으로 통했다. 노스볼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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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IPO(기업공개)에 나설 거란 소식도 있었습니다. 시장에선 기업가치가 200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할 거라고 기대했죠. 폭스바겐·골드만삭스·BMW와 스웨덴 연기금을 대주주로 둔 이 배터리 제조 기업은 유럽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받아놓은 주문량만 550억 달러어치(약 77조원)에 달할 정도였죠. 앞날이 창창한 ‘될성부른 떡잎’으로 여겨졌습니다.
올해 3월 25일 노스볼트 독일 공장 착공 기념식의 모습. 왼쪽 세번째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그 오른쪽이 로버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연방 경제 및 기후보호부 장관, 그 바로 옆이 페테르 칼슨 노스볼트 CEO이다. 이때만 해도 참 희망이 넘쳤다. 노스볼트 홈페이지
주요주주인 BMW가 가장 먼저 손절에 나섰습니다. “인내심을 잃었다”며 6월 노스볼트와 맺었던 2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셀 공급 계약을 해지하고, 삼성SDI로 갈아탔죠.
그리고 11월. 현금이 바닥난 노스볼트는 이제 생존이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스웨덴 정부가 나설 거란 기대도 꺾였죠. 이 나라 재무부 장관은 15일 “노스볼트를 정부가 소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현지 언론은 노스볼트가 미국에서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합니다.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주가 고비란 보도도 이어집니다. 유럽 전기차 산업에서 희망의 등불로 통했던 노스볼트 불꽃이 이대로 사그라지는 걸까요.
지난 9월, 노스볼트 CEO 피터 칼슨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를 전 세계적인 전기차 수요 둔화로 돌린 거죠.
노스볼트의 스웨덴 셸레프테오 기가팩토리의 모습. 스웨덴 북부의 황량한 지역에 공장이 있다. 노스볼트 홈페이지
지난 9월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친 건 스웨덴의 작가이자 유명 블로거인 라스 윌더란그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제보라며 이렇게 공개했죠.
“노스볼트는 중국 우시리드로부터 배터리 제조 장비를 구입했지만, 배송된 문서는 일부 지워져 있었습니다. 스웨덴 현장에서 장비를 사용하려면 우시리드의 중국 작업자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장비에 대한) 지식 전달이 부적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덧붙입니다. “우시리드는 처음부터 사업을 방해했습니다. 그 의도는 노스볼트를 파산시켜 중국 기업이 이를 매입하게 하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즉 “순진한 스웨덴인”이 중국 기업에 일종의 사기를 당했다는 음모론이었습니다.
노스볼트의 1공장은 중국 우시리드가 조립공정·화성공정을 턴키(일괄) 납품했다. 이 장비의 품질 문제와 중국 근로자와의 언어 혼란이 배터리셀 생산차질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노스볼트 홈페이지
“기계 작동용 메뉴는 중국어였어요. 우린 기계 작동법을 이해하려고 구글 번역을 사용해야 했죠. 현장엔 중국인 근로자가 수백명이었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기계가 중국산이었는데 결함이 많았어요. 기계 전체가 집 차고에 있을 법한 전선으로 제작돼 결코 작동할 수 없었죠. 중국산 장비는 표준 이하에요.”
자, 여러분이 보기엔 어떠신가요. 중국이 유럽의 배터리 야망을 훼방 놓기 위해 일부러 노스볼트를 망쳤다는 해석, 그럴듯한가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우시리드는 CATL은 물론 테슬라와 폭스바겐에도 장비를 공급한 이 분야 선두 기업인데요. 사업을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고객사를 그렇게까지 방해할 수가 있을까요. 또 만약 그런 조짐이 보였다면 노스볼트 측이 얼마든지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유럽엔 배터리 제조 경험이 있는 노동자가 거의 없는 데다, 노스볼트의 임금 수준도 높지 않은 편이어서 경력이 풍부한 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노스볼트 직원 중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직원이나 유럽에 정착하려는 이민자가 많은 이유다. 게다가 중국과 한국 장비 제조업체 인력까지 파견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문제가 큰 이슈이다. 노스볼트 홈페이지
일단 우시리드와의 협업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특히 전선을 포함한 장비 품질 문제가 심각했죠. 하지만 그 진짜 원인은 엉망진창인 노스볼트의 조달 프로세스에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노스볼트는 우시리드에 형편없이 작성된 모호한 사양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우시리드)은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지만, 유럽에선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저렴한 전선을 설치했죠. 노스볼트 직원은 장비 허가를 위해 중국으로 가서 이를 확인하고도 ‘배송 가능’으로 서명합니다. 마감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쨌든 승인한 거죠.”
그는 나머지 각종 문제-도면 등을 문서로 주기를 꺼리고, 매뉴얼 번역이 엉망이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은 것-가 있지만, 기업 문화 차이+영어실력 부족 때문이지 ‘음모’까진 아니라고 봤습니다.
유럽 매체 ‘더 로컬’과 인터뷰한 직원 반응도 이와 비슷합니다. “노스볼트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계약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는 아무 가치도 없었죠. 실제로 무엇을 공급해야 하는지, 일정과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중국 기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그들(노스볼트 경영진)이 진짜 기술적 실사 없이, 모든 것을 엉성하게 조립했기 때문이죠. 그저 끔찍하게 잘못 관리한 겁니다.”
노스볼트가 독일에 짓기로 한 기가팩토리의 조감도. 노스볼트 홈페이지
FT는 노스볼트의 너무 빠른 성장과 경험 없고 무능한 임직원을 핵심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FT와 인터뷰한 익명의 직원은 이렇게 말하죠. “전 이렇게 많은 관리자와 임원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 경험이 부족한 직원이 많아요. 관리자, 엔지니어, 생산직, 심지어 임원까지.”
노스벨트 CEO 페테르 칼슨은 야망이 크고 대담하며 공격적인 스타일의 경영자입니다. 스웨덴 첫 공장의 배터리셀 양산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바로 캐나다와 독일에 공장을 추가로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또 나트륨이온배터리와 항공기용 배터리 개발, 폐배터리 재활용으로도 나아갔죠. 너무 빨리, 많은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스웨덴 노스볼트 기가팩토리를 둘러보고 있는 다니엘 베스틀링 스웨덴 공작(오른쪽, 왕세녀의 남편)과 페테르 칼슨 CEO(가운데). 노스볼트 홈페이지
그럼, 노스볼트는 능력도 부족하면서 왜 그렇게 확장에만 열을 올렸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많다고 봤기 때문이죠.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 ‘유럽 최초 배터리셀 생산’이란 화려한 타이틀 덕분에 그동안은 돈이 쉽게 따라왔습니다. EU나 독일과 캐나다 정부의 보조금, 각종 녹색 대출, 그리고 연기금 같은 기관의 투자까지 말이죠. 배터리셀을 잘 만드는 실력보다는 녹색투자 열풍의 한가운데 서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겁니다.
결국 과대포장된 일종의 거품이었습니다. 스웨덴 옌셰핑 국제경영대학원 교수인 크리스티안 샌드스트롬은 “정부가 녹색 버블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다”고 지적하죠. “노스볼트는 자본조달 대부분을 자기자본이 아닌 부채를 끌어들여 이뤘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엔) 아무 리스크가 없는 환경을 만들었죠. 터무니없지만, 정치 자본가(political capitalists)엔 기회였습니다.” By.딥다이브
노스볼트의 위기는 한국 배터리 3사엔 기회가 될까요. 그런 해석이 없진 않지만, 노스볼트가 국내 장비 제조업체 여러 곳의 주요 고객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유럽 배터리의 희망이었던 노스볼트가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배터리셀 생산이 끔찍하게 부진한 탓에 납품이 지연되면서 현금이 바닥 났습니다.
-생산 부진의 원인 중 하나는 중국산 불량장비로 인한 혼란입니다. 이를 두고 스웨덴에선 ‘중국 기업이 일부러 노스볼트를 망가뜨리고, 이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식의 음모론이 판칩니다.
-하지만 노스볼트의 구매 프로세스의 허술함이 중국산 장비를 둘러싼 대혼란을 초래한 진짜 원인일지 모릅니다. 배터리셀 만드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너무 빨리 사업을 확장하려고만 한 비현실적 야망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는 비옥한 환경이 거대한 녹색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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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