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등 핵보유국 지원으로 러 본토 공격 시 핵사용 조건 완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비(非)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를 담은 새 ‘핵 교리(핵무기 사용 원칙)’를 공식 승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사거리 약 300km인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 표적을 공격하도록 허가하자 곧장 서방에 핵 사용 문턱을 낮추는 새 핵 교리로 맞선 것이다.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노보스티는 19일(현지 시간) 푸틴 대통령이 핵 교리 개정안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 법령은 러시아 정부 홈페이지에 게재됐으며 이날부터 시행된다.
개정된 핵 교리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조건을 자세히 명시하고 있다. 새 핵 교리에는 러시아가 자국 영토 보전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공격을 받는 경우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맞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보유국이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모두 러시아를 공격한 나라로 간주하고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핵보유국인 미국이 비핵보유국인 우크라이나에 에이태큼스를 통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승인한 만큼 실제 이 무기로 러시아 본토가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해 핵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푸틴 대통령이 개정된 핵 교리를 승인하며 핵무기 사용 조건을 대내외에 공개한 조치는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에이태큼스의 러 본토 타격을 허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앞선 9월 핵 교리 개정을 선언했지만 미 결정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직후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가 에이태큼스로 러시아 본토 남서부 쿠르스크를 점령 중인 자국 병력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