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와는 다른 게 있다. 한때 공격수로 유명했던 한 축구선수가 골을 잘 넣는 비결을 묻자 “자리를 잘 잡는 것”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공을 잘 다루는 건 기본이고 공이 올 만한 곳에 미리 가서 자리를 잡는 위치 선정이 중요해요. 상대 골문 앞 어디에 서 있을지 감을 잡는 데 10년쯤 걸리더군요.”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그런데 같은 물이라도 강을 좀 더 좋아한다. 이유가 있다. 고여 있는 연못이나 호수와 달리 강은 물이 계속 흐르기에 봄이 가까워지면 그 햇빛을 받은 따뜻한 물을 먼저 느낄 수 있어서다. 봄이 멀리서 오기 시작할 때, 이를 먼저 알아차리면 동면에서 일찍 깨어날 수 있고, 그러면 겨우내 소모한 체력을 빨리 보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생일대의 과업인 짝짓기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강이 아닌 연못이나 호수를 좋아하는 비단거북, 늑대거북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들은 너무 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그러니까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가장 얕은 바닥의 진흙 속에서 겨울을 보낸다. 얕을수록 봄이 올 때 물이 빨리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얕으면 안 되는 게 너구리 같은 포식자들의 눈에 띄기 쉽다. 반대로, 너무 깊으면 수온 변화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동면하는 자리 하나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숲 바닥에 떨어진 신갈나무 도토리들 역시 다음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시작을 한다. 겨울이 오기 전 미리 뿌리를 내려두는 것이다. 이러면 봄이 올 때 곧바로 성장을 시작할 수 있다. 숲의 큰 나무로 자라는 비결일 것이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전 회장은 1974년 봄,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밤, 혼자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둘러보다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근처 초소에 있던 경비원이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덕분에 살 수 있었는데, 경비원이 보니 옷과 신발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물속에서 몸을 잘 움직이려면 벗는 게 효과적인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한 말이 참 그다운 것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순간에서조차 다음 상황을 생각한 그였기에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