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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기업 장기성장 전략까지 주도해 ‘밸류업’… 사모펀드 인식을 바꾸다[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입력 | 2024-11-19 23:00:00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창업자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사모펀드(Private Equity·PE)는 주식이나 채권처럼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판매되는 펀드가 아니라 주로 국민연금과 같은 소수의 대형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하는 펀드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기업을 운영하고 개선하여 가치 상승을 도모한 후, 일정 기간 후에 매각 또는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수익을 창출한다. 현대 금융 시장에서 사모펀드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가치를 높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이들은 경영진의 방만한 기업 운용 또는 기업 자산을 이용한 사적 이익 충족 등 대리인 문제로 인해 기업의 가치가 떨어졌을 때, 기업을 인수해 경영진을 교체하고 새로 능력 있고 충실한 경영자들을 임명하여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중요한 시장 참여자들이다. 특히 이러한 산업을 최전방에서 이끌고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발전을 가져온 대표적 기업이 1조1000억 달러(약 1540조 원)를 운용하며 글로벌 금융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블랙스톤이다. 오늘은 이 블랙스톤의 공동 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세계최대 사모펀드 일군 M&A 대가

슈워츠먼은 194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10세부터 아버지의 조그만 상점에서 일을 도왔다. 당시 그가 제안한 할인 판매 전략은 큰 성과를 냈는데, 이런 경제 활동은 후에 그가 대규모 기업에서도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일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이수했다. 졸업 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에서 근무하며 기업 M&A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투자은행에서 M&A 분야의 매니저까지 성장한 슈워츠먼은 1985년 당시 리먼브러더스의 최고경영자(CEO)이자 개인적 멘토였던 피터 피터슨과 함께 블랙스톤 그룹을 설립했다. 당시 금융계에서 가장 승승장구하던 두 인물이 손을 잡고 창업하였으나, 시작은 그리 밝지 않았다. 많은 곳에서 문전박대를 당했고, 그들과의 약속을 안 지키는 조직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에도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M&A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이후 사모펀드로서 크게 성장한 후 부동산, 신용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세계 최대의 대체 자산 운용사를 만들었다.

슈워츠먼의 블랙스톤은 인수한 기업을 단순히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블랙스톤은 피인수 기업의 이사회에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여 투명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관점을 경영에 반영하였다. 경영진의 성과와 보상을 기업의 장기적 성과와 연동시키는 보상 체계도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경영진들이 기업의 가치에 더 신경을 쓰게 함으로써 자연스레 ‘밸류업’을 이끌어냈다. 힐턴호텔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블랙스톤은 2007년에 자기 자본 약 56억 달러, 총 인수 금액 260억 달러로 힐턴호텔을 인수하였다. 가장 먼저 경영진을 교체하고 기업 지배구조 시스템을 재정비하였고 개선된 시스템을 통해 힐턴의 글로벌 확장 및 브랜드 발전에 힘썼다. 그 결과, 힐턴은 2013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재상장하여 블랙스톤은 약 140억 달러의 수익을 실현했다.

슈워츠먼은 블랙스톤을 통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반영한 장기적 투자 전략도 주도했다. 블랙스톤은 탄소 배출 감소 목표 설정, 사회적 책임 투자 등을 통해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고, 이는 사모펀드 업계가 ESG 경영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블랙스톤은 2021년에 블랙스톤이 투자한 기업에 ESG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더 많이 투자했다. 블랙스톤의 ESG 강화는 투자자들과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에 사회적 책임을 더함으로써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모펀드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도와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이를 사모펀드 업계의 주요 투자 전략으로 자리 잡게 했다. 다만, 최근 들어 미국 내 일부 주에서 ESG 투자에 대한 반발이 증가하고 정치적 논란이 심화하면서, 블랙스톤은 현재는 ESG 전략 추진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과거 사모펀드는 종종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인수한 기업에서 대규모 해고를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 왔기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주로 받았다.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던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주인공인 리처드 기어가 사모펀드 경영진으로 나온다. 그는 기존 회사를 해체하고 단기적 이익만을 위해 많은 직원을 해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상투적인 사모펀드의 이미지와는 달리 슈워츠먼은 블랙스톤이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주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투자자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였고, 사모펀드가 경제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SG-사회적 책임 경영 강화 전략

우리나라에서 여러 기업 중 일반인들에게 큰 미움을 사고 오해를 받고 있는 기업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사모펀드 기업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재벌 체제의 지배구조가 안정적이고 중장기적인 경영을 가능케 하는 데 반해,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획득하면 ‘단기 차익’에만 골몰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단기적인 이익만 추구하고 국가 경제에 해를 일으키는 사모펀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재벌 체제가 불러온 부작용도 적지 않다. 반면 사모펀드 역시 순기능을 발휘하는 부분이 있기에 사모펀드 위주의 기업 지배구조도 마땅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우리나라에 미친 순기능은 무엇일까? 여러 순기능이 존재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M&A 시장의 활성화이다. M&A 시장이 활성화되면 스타트업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들이 보다 유리한 조건에 회사를 매각하고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 활발한 M&A 시장은 초기 벤처 캐피털과 에인절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더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 즉, 사모펀드의 마중물이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방만경영 막고 창업 생태계 활성화

둘째, 적대적 인수합병을 포함해 M&A 시장이 활발해지면 기업들이 방만한 경영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사모펀드는 중요한 외부 기업 지배구조 시스템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다. 만약 경영진이 방만한 경영을 해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데도 아무런 시장의 조치가 없다면 경영진은 별 부담 없이 기업을 마음대로 운영할 것이다. 이때 사모펀드의 활동이 활발하다면, 기업의 경영진들은 항상 긴장한 상태로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데 노력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주가가 낮은 이유 중 하나로 기업 승계를 위한 고의적 주가 낮추기가 언급된다. 기업을 승계할 무렵에 증여·상속세를 낮추기 위해서 많은 주주들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주가를 낮추는 행위 역시 M&A 시장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는 항상 다양한 기업 지배구조 시스템들이 존재하며 서로를 보완할 때 일반적인 주주들에게 그 이득이 돌아간다. 기존 재벌 체제도 완벽하지 않듯이 사모펀드 체제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이들이 공존하여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할 때 일반 주주들에게 최대 이득이 돌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산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기에 초반에는 전문성이 부족한 기업들도 존재했고 단기적 차익만을 노리던 기업들도 존재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나라 사모펀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MBK파트너스, IMM PE, 한앤컴퍼니, VIG파트너스, 미래에셋파트너스 등이 사모펀드의 순기능들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고 그 뒤로 다양한 사모펀드들이 설립되어 주주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부디 슈워츠먼의 블랙스톤처럼 기업 성장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모펀드 기업들이 성장하여, 한국의 주주들이 그토록 바라는 한국 주식시장의 ‘밸류업’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