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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광영]이긴 선거도 반성문 쓰는 앤디 김의 정치

입력 | 2024-11-19 23:15:00

신광영 논설위원


앤디 김 미국 연방상원의원 당선자에게 4년 전인 2020년 11월은 경사가 겹친 달이었다. 김 의원은 하원의원 재선에 성공했고, 그가 속한 민주당의 조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상·하원 역시 둘 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 당선자들의 축하연이 한창이던 때 김 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들이 대선에선 트럼프를 더 지지한 점에 주목했다. 그냥 지나쳐선 안 될 민심이었다. 그는 파티 대신 미팅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하원 재선 성공에 파티 대신 민심 청취


주민들은 그에게 기성 정치인에 대한 오랜 불신과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냈다. 민주당 역시 현상 유지를 원하는 낡은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트럼프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트럼프의 성격과 정책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기득권 정치에 대한 혐오를 뛰어넘진 못했다. 김 의원은 주민들 의견을 녹음해 반성문 형식으로 정리하며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은 트럼프가 부활하는 데 산소를 공급해 줄 수 있다.’

김 의원이 그때 쓴 반성문을 다시 꺼낸 건 그가 상원의원에 당선돼 축하 인사가 쏟아지던 지난 8일이었다. 그는 4년 전의 우려가 이번 대선에서 고스란히 현실화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우리는 경각심을 가졌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오만함을 내려놓고, 우리가 답을 안다고 단정하지 말고 나가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읍시다.’

한국계 첫 연방 상원의원 탄생이란 쾌거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대목은 이긴 선거에서도 놓친 민심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김 의원의 정치 습관이다. 2021년 1·6 의사당 폭동 때 그가 무릎을 꿇고 쓰레기를 치우던 모습도 이런 겸손함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소수인종 출신 정치인이 주류 정치의 벽을 넘기 위해 나름대로 익힌 생존 전략일 수 있지만 낮은 자세로 민심을 살피는 그의 방식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있다.

선거 승리 후에도 유권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놓친 민심은 물론이고 자신이 선택받은 이유를 알게 되는 효과가 있다. 김 의원은 주민들과 만나며 기업의 선거 자금을 받지 않고 개혁과 부패 척결을 앞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소수인종에게 견고한 유리천장이던 상원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민심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다.

그가 당선된 뉴저지주는 당과 보스 정치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지역이다. 당의 지지를 받고 그 후광으로 기업들 후원을 받으면 자동 당선이란 뜻의 ‘정치 기계(Political Machine)’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3선을 하며 상원 외교위원장까지 오른 민주당 거물이 뉴저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뇌물 혐의로 기소되자 김 의원은 곧바로 사퇴 요구를 하며 상원 출마를 선언했다. 당의 불출마 권유와 ‘중진들의 허락이 먼저’라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김 의원이 과감히 결단할 수 있었던 건 기득권 정치를 거부하는 바닥 민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참패해도 반성문 제대로 안 쓰는 한국


우리 정치로 시선을 옮겨 보면 이긴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크게 진 선거에서마저 제대로 된 반성문을 쓴 사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은 선거 후 200일이 지나서야 맹탕 백서를 내놨을 뿐이다. 야당 역시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오롯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민심으로 착각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실패해도 잘 되새기면 역전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고, 성공해도 승리에 취하면 실패의 조짐을 간과하게 된다. 이긴 선거에서도 반성문을 쓰는 앤디 김의 미 상원 입성은 좋은 정치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