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전투 장면. KBS 제공
이문영 역사작가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로 목종은 여전히 건재했다. 강조는 왕명도 없이 군대를 끌고 온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반역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는 목종을 폐위시키고 왕순을 모셔 와 제8대 왕 현종으로 즉위시켰다. 목종은 그날로 유배되었다. 강조는 후환을 남겨둘 수 없었다. 부하를 시켜 목종을 시해하고 말았다.
다음 해 봄, 북방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등주(함경남도 안변)에 여진족이 침입하여 30여 부락을 불태웠다. 이에 고려 장수가 여진 사람 95명이 내조하였을 때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참사를 일으켰다. 분개한 여진은 거란에 복수를 청했다. 거란은 마침 잘됐다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침략의 핑계는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대역죄를 벌하겠다는 것이었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의 영류왕 시해를 침략의 핑계로 댄 것과 마찬가지였다.
강조가 노는 사이에 거란군은 검차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내 돌파에 성공했다. 거란군이 검차를 우회하여 진을 파훼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 강조에게 귀신이 된 목종이 나타났다고 한다. 살해당한 목종이 “네 놈은 끝났다. 천벌이 너를 멀리하겠는가!”라고 하자 강조는 투구를 벗고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다 빌었다고 전해진다. 전군의 총수가 이러고 있으니 고려군이 전황을 뒤집을 리 만무했다. 강조도 포로로 잡혔다. 거란 성종은 강조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말했는데, 강조는 “고려의 신하가 어찌 네 신하가 되겠는가?”라고 대꾸하며 고려에 대한 충심을 끝까지 지켰다. 포로가 된 다른 장수가 얼른 신하가 되겠다고 하자 강조는 그를 발로 차며 꾸짖기도 했다.
정보를 잘못 읽고 군주를 시해했으며, 군사 정보 파악에 실패해서 나라의 큰 위기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라에 대한 충성은 잊지 않았던 문제적 인물이 강조다. 그의 오판은 모두 정보를 잘못 파악한 데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미-중-러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정보 분석은 정말 중요하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문영 역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