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석상서 공적 발언 했던 정치지도자들 배치되는 행동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안해 표 줬던 국민들, 인지적 모순에 내적 갈등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당신이 어떤 식당에 가서 식사했다. 아무리 좋게 평가하려 해도 도저히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당신에게 돈을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 집 음식이 정말 맛있다는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가정해 보자. 거짓말을 하고 난 뒤, 그 음식이 ‘실제로 어땠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1만 원을 받고 거짓말을 한 경우와 20만 원을 받고 거짓말을 한 경우, 어떤 상황에서 당신은 그 식당의 음식이 더 맛있었다고 평가할까?
답은 1만 원을 받은 경우이다. 20만 원이라는 거금을 받은 사람들은, 그 정도 큰 보상을 받으면 누구라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말했든 음식에 대한 본인의 평가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작 1만 원에 양심을 팔았다고 생각하면 너무 괴롭지 않은가. 이미 엎질러진 물, 한 번 내뱉은 말을 돌이킬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음식 맛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러므로 딱히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상황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비록 구체적인 상황 설정은 다르지만, 이는 1959년 발표된 고전적인 심리학 실험에서 페스팅거와 칼스미스가 발견한 연구 결과이다(이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정말 지루하고 무의미한 작업을 하게 한 뒤, 다른 사람에게 그 작업이 매우 흥미롭다고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인지 부조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 태도, 가치관 사이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할 때, 혹은 자신의 행동이 신념과 불일치할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가리킨다. 페스팅거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에 가능하면 인지 부조화가 발생할 만한 상황을 피하려고 하고,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 경우 이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 아무리 애써도 따 먹을 수 없는 멀쩡한 포도를 신 포도라고 폄하(?)한다거나, 역으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결혼일수록 배우자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이런 하찮은 인간 때문에 고초와 희생을 감내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 것인가).
이렇게 보면 인지 부조화를 자기중심적 편향과 연결하여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쉽지만, 일관성에 대한 요구가 내면을 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돌아보게 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자아 개념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지행합일, 언행일치를 마땅히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석상에서 공인의 자격으로 했던 본인의 발언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신승리 사례들을 넘치도록 접하다 보면, “사람들은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내적 동기를 가진다”는 명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뿐이랴,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대통령은 듣도 보도 못했던 정치 브로커에게 휘둘렸다 하고, 격하게 응원했던 야당 지도자는 사법부의 유죄 판결을 받아 정치 생명이 불확실해지는 이래저래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느 쪽이든 인지 부조화를 겪는 국민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현명한 국민은 각자의 방식으로 내적 갈등을 다스리고 균형을 회복하려 하겠지만, 굳이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대상에 대한 태도의 일관성과 애초 그 태도를 형성하는 근거였던 가치 기준의 일관성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