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산업1부 차장
자동차는 ‘제조업의 꽃’이라 불린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이 3만 개가 넘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스프링부터 이름도 생소한 스테빌라이저(차체 기울어짐 감소 장치)까지 정말 많다. 사용되는 소재도 철강과 비철금속, 고무, 유리, 플라스틱, 탄소섬유 등 다양하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가장 중요한 기초 소재라는 얘기다. 철강 산업의 경쟁력은 제조업 전반의 성장과 고용 창출과도 직결돼 있다. 자동차, 건설, 조선, 가전, 기계 등 주요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기본 소재가 철강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꽃’과 ‘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들면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다. 이것이 중국 고도 성장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들의 핵심 고객인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에서 먼저 발을 뺐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에서 판매가 급감하면서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올해 1월에는 충칭 공장을 매각했다. 일본 혼다자동차는 중국 공장 3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매각을 검토하기로 했다. 닛산자동차는 6월 장쑤성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금융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과는 사뭇 의미가 달라 보인다. 금융 자본의 이동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거대한 장치 산업인 자동차·철강의 이동은 회사의 명운과도 직결된 일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세계의 성장을 견인했던 세계의 공장 문이 닫히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갈수록 경직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앞세운 철저한 실용주의적 개혁개방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도 제공했다.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중국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 뿐이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자동차·철강을 포함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사드 사태’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중국의 변화를 빨리 눈치챘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